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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바둑에 약이냐 독이냐

입력
2016.03.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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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기초 책 판매량 작년보다 증가

침체기 겪던 학원도 수강 문의 늘어

“알파고의 신비감 때문에 생긴 열풍”

관심 줄어들 땐 제2의 체스 우려도

tvN '응답하라 1988'에 프로 바둑기사 최택 6단으로 출연한 배우 박보검. '응답하라 1988' 공식 홈페이지
tvN '응답하라 1988'에 프로 바둑기사 최택 6단으로 출연한 배우 박보검. '응답하라 1988' 공식 홈페이지

인류대표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대국은 바둑계 부흥에 호착(好着)일까, 악수(惡手)일까. 12일 이 9단과 알파고 간 3차전을 앞둔 현재까지 스코어는 0대2, 인간의 패배 흐름. 하지만 바둑이 주요 소재였던 TV 드라마 ‘미생’‘응답하라 1988’에 이어 바둑 문외한들의 시선을 반상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이번 대결이 바둑 열풍에 불을 지핀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이 9단의 0대5 완패로 끝날 경우 컴퓨터에 패한 뒤 쇠락하고 있는 체스의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는 비관적 전망도 만만치 않다.

‘바알못’도 공부하게 하는 바둑 열풍

1980~9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한국 바둑은 컴퓨터게임 등 다양한 여가 수단의 등장과 젊은층의 외면으로 2000년대부터 하향곡선을 그려왔다. 그러나 ‘AI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란 호기심에서 시작된 이번 대국의 인기 열풍이 한국 바둑 재도약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감도 바둑계에선 나오고 있다.

9일 첫 대국이 끝난 후 서울의 대형서점들에서는 시민들이 앞다퉈 바둑 책을 찾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스스로를 ‘바알못(바둑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 칭한 회사원 고현우(33)씨는 바둑 입문 서적을 구매해 ‘좌상귀’ ‘요석(要石)’ 같은 생소한 용어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고씨는 11일 “바둑은 중장년층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이번 대국을 보면서 치열한 두뇌게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이미지도 만들고 평생 가는 취미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강남 대형서점 직원은 “바둑의 기초에 관한 책을 찾는 고객이 거의 드물었지만 최근에는 꽂아두기 무섭게 나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1~8일 바둑 서적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의 관심이 급증하면서 침체기를 겪던 바둑 학원도 쾌재를 부르고 있다. 서울 성동구 이세돌바둑연구소 관계자는 “대국이 이슈화한 뒤 수강 문의 전화가 20% 정도 늘었다”고 전했다. 서울 목동에서 바둑학원을 운영하는 이용수 7단은 “미생으로 바둑이 관심을 끌기 시작해 응답하라 1988로 대중화했고 이번 대국으로 정점을 찍었다”며 “9년간 바둑을 가르치며 이런 인기 반응은 처음”이라고 평했다. 육아 커뮤니티에서도 ‘바둑이 아이의 두뇌 발달과 인내심 향상에 도움이 되니 태권도 대신 바둑을 가르쳐보겠다’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착시 현상일뿐… 제2의 체스 우려도

반면 바둑에 대한 관심은 미풍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이 9단이 연달아 무릎을 꿇을 경우 바둑계의 쇠락을 점치기도 한다. 97년 AI 컴퓨터 ‘딥 블루’에 패배한 뒤 침체기로 들어선 체스 산업과 같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서울 성동구에서 8년째 기원을 운영 중인 김익한(58)씨는 “알파고와의 대결로 반짝 인기를 끌고 있지만 바둑의 심오한 원리보다 기술에 대한 신비감 때문에 생긴 이상 열풍”이라며 “어린 학생이나 젊은층이 꾸준히 관심을 갖지 않으면 바둑의 미래가 어둡다”고 분석했다.

이 9단이 알파고에 승리를 모두 내줄 경우 바둑의 위상 자체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바둑 수업을 가르치는 김모(40)씨는 “AI가 체스 세계 1위를 꺾은 뒤 체스가 놀이 수준으로 전락한 것처럼 바둑의 가치가 바닥을 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기원 관계자도 “이 9단이 완패하면 아예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석과 정수 중심으로 바둑을 연구하고 교육하던 기존 방식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병두 세한대 바둑학과 교수는 “컴퓨터와 인간이 대국할 만큼 시대가 변했는데 바둑계는 수십 년째 도제식 전통 교육을 고수하고 있다”며 “열악한 환경과 교육 방식이 바뀌어야 바둑의 중흥기가 다시 찾아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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