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책공장 김경미 대표
마지막으로 몸담은 출판사는 안국역 근처에 있었다. 덕분에 여러 집회 소식을 빠르고 좀 더 생생하게 전해 들었다. 종로 일대에서 퍼지는 노랫소리와 함성이 사무실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가서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 앞에는 작업해야 할 것들이 쌓여 있었고 나는 메인 몸이었다. 그러다 퇴사를 하게 되었고 한동안 외주 편집자로 일했다.
외주 편집자로 일하면서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자 전부터 가고 싶었던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이 투쟁 중인 대한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할 수 있었고 숨쉬는책공장 첫 책인 ‘아무도 잊혀지지 마라’의 필자이자 사진작가인 점좀빼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각종 투쟁 현장을 따라다니며 사진으로 기록하는 점좀빼 작가는 나에게 필자 혹은 사진작가 이전에 동지였던 셈이다.
점 작가는 수줍지만 크고 밝은 웃음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집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했고 열심히 사진을 촬영했으며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은 물론 연대하러 온 많은 이들과도 따뜻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쌍용자동차 대한문 농성장을 드나들면서 다른 농성장이나 집회 장소도 찾기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점 작가와 마주쳤다. 그렇게 여러 곳에서 얼굴을 보며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으며 지내게 되었다.
여러 농성장을 찾아 다니며 내가 좀 더 보탬이 될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됐다. 그러다 책을 통해 투쟁을 알리고 노동자들이 현재 겪고 있는 여러 부조리하고 어려운 상황들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가장 가까이에서 자주 보았던 쌍용자동차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진집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점 작가가 사진집 작가로 적격으로 보였다.
대략적인 구상을 하고 점 작가를 찾았다. 2013년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가 열리던 여의도 공원에서 사진집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것이 2012~2014년 쌍용자동차 투쟁을 기록한 사진집 ‘아무도 잊혀지지 마라’의 시작이었다.
이후 점 작가와 나, 편집 작업을 함께하기로 한 후배는 자주 만나 회의를 했다. 그때는 숨쉬는책공장이 사무실도 마련하지 못했던 터라 주로 커피숍에서 모였다. 투쟁 이야기를 담은 책을, 그것도 사진과 함께하는 책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작가 개인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아닌, 타자의 이야기를, 그것도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하나의 책으로 꾸리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점 작가의 열의, 편집을 함께한 후배, 디자인 작업을 한 후배, 그리고 구성에 도움을 주신 한금선 작가 덕분에 책이 세상에 나왔다.
혹자들은 싸움을 이어 가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투사’라 한다. 하지만 작가 점좀빼는 그들이 “투사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 투사로 거듭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 말한다. 이 자리를 빌려 여러 독자분들과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 책을 따뜻하게 품어주신 쌍용자동차 조합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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