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3월 11일
1818년 3월 11일, 인류는 한 21세 영국 소녀에 의해 SF라는 문학 장르를 얻었다. 그의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초판이 영국에서 출판됐다. 메리 셸리(Mary W. Shelley, 1797~1851). 그는 선구적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아나키즘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의 딸이고, 낭만주의 시인 퍼시 셸리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작가 메리 셸리의 실명을 밝혀 다시 낸 1831년판 서문에 따르면, 1815년 18세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결혼 전 이름)은 당시엔 연인이던 퍼시 셸리와 스위스로 여행을 떠나 바이런의 제네바 별장에 들렀다. 폭풍우 치는 어느 밤, 무료함을 견디던 차에 바이런이 각자 괴담을 하나씩 써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 밤 바이런이 쓴 흡혈귀 이야기는 그의 친구 존 폴리도리(1795~1821)에 의해 장편소설 ‘뱀파이어’가 됐고, 1897년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로 이어졌다.
그 여행에서 메리 셸리는 이야기를 만들지 못했지만 아이디어를 얻었다. 연인 퍼시와 바이런이 나누던 대화 중 ‘갤버니즘(galvanism)’이란 말을 듣게 된 거였다. 이탈리아 해부학자 갤버니(Luigi Galvani, 1737~1798)는 기전기(起電機ㆍ마찰이나 정전기 등을 통해 전기를 발생시키는 장치)가 놓인 테이블 위에서 해부한 개구리 다리 신경을 메스로 건드리면 근육이 수축되며 기전기에 전기 불꽃이 튀는 사실을 관찰, 동물 전기라는 게 뇌와 신경ㆍ근육 회로를 따라 흐른다는 내용의 논문을 과학잡지에 발표했다. 갤버니즘이 밤의 대화에 등장한 건 그 실험이 문학인들의 고딕적 상상력을 자극했기 때문이겠지만, 과학 자체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 그만큼 컸을 것이다. 어쨌건 그렇게 문학과 과학이 만났다.
셸리는 여행 뒤 천재 물리학도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했고, 그에게 죽은 몸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능력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의 과학자는 “존재가 허락하는 것보다 더 위대해지려고 갈망하는 사람보다 자기 고향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더 행복한지를”(오숙은 옮김, 열린책들) 알아야 한다고 세상에 충고하면서도, 자신은 예외로 알 만큼 오만했다.
프랑켄슈타인은 죽은 자의 몸을 조립해 키 240㎝의 괴물을 만들었고, 그 새 생명에 의해 연인과 가족과 친구와 제 생명을 잃는다. 낭만주의 시대의 작가 셸리는 그 비극의 바닥에 괴물의 고독-반려 없는 운명-을 융단처럼 깔았다. “내가 이토록 잔인해진 것은 억지로 내게 주어진 이 진저리 나도록 고독한 삶 때문이오!”
셸리가 ‘창조’한 건 캐릭터와 서사, SF라는 새로운 장르에 그치지 않았다. 위대한 작품은 그 작품을 알게 된 새로운 인류를 창조한다. 물론 그 인류는 천재의 충고를 알지만 대개 자신은 ‘예외’라 여기는 이들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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