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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오비이락(烏飛梨落)

입력
2016.03.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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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2004년 제17대 총선 때부터 당 대표로서 지휘한 주요 선거마다 승리로 이끌어내면서 붙여진 별명이다. 선거 때 현장 방문이나 지역 유세에서 손 한 번만 흔들어줘도 표가 움직이는 게 눈에 보인다. 그래서 선거철에는 접전지 당 후보들이 그에게 지역 방문을 해달라고 목을 매기도 한다. 이 정권 들어 새누리당이 재보선을 포함한 모든 선거에서 승리했던 배경에도 박 대통령의 힘이 작용했다. 직접 선거를 지휘하지는 않는다지만 그때그때 선거에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 10일 박 대통령의 대구경북지역 방문을 둘러싸고 진박(진실한 친박근혜계) 구하기 논란이 분분하다. 당 공천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진박 인사들을 지원하려고 선거의 여왕이 나섰다는 것이다.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그 성정에 진박이 불리한 상황을 놔두겠느냐며 공천 전 박 대통령의 대구방문을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청와대는 경북 안동으로 이전한 경북도청 개청식 참석과 창조경제 혁신센터 방문 등은 오래 전에 잡힌 일정이라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이날 박 대통령의 동선을 뜯어보면 그런 해명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다.

▦ 이날 첫 방문지인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대구 동구갑 선거구에 있다. 현역 류성걸 의원과 진박으로 분류되는 정종섭 전 행자부 장관이 격돌한 지역이다. 그리고 바로 옆 동을은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 낙인을 찍은 바 있는 유승민 의원에게 진박을 자처하는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도전장을 낸 곳. 이어 방문한 대구 국제섬유박람회장은 북구갑으로 현역 권은희 의원과 진박에 속하는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이 경쟁하는 곳이다.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 눈밖에 벗어난 현역의원들 지역을 관통해 지나간 형국이다.

▦ 대구는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애착이 남다른 지역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행사들에서 선거와 관련된 언급은 피했지만 공천을 코 앞에 두고 다녀간 것만으로 지역 민심을 움직여 공천여론조사 등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민감한 시기에 오이 밭에서 신발끈을 고쳐 매고 배나무 아래에서 갓끈에 손을 댄 셈이 됐다. 오비이락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뻔히 예상된 상황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만 대구시민 수준을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냐는 반론도 만만찮아, 두고 볼 일이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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