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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바이블 ‘미슐랭’ 드디어 서울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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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바이블 ‘미슐랭’ 드디어 서울 진출

입력
2016.03.1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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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만 무성했던 '미슐랭 가이드' 아니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이 마침내 발간된다.
소문만 무성했던 '미슐랭 가이드' 아니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이 마침내 발간된다.

책 자체는 단출하다. 코트 주머니에도 쏙 들어갈 만큼 조그만 문고판이다. 책을 펼쳐 봐도 여전히 단출하다. 대개는 식당의 전경 사진, 그리고 그 식당이 어떤 곳이고 어떤 음식을 내는 지에 대한 짤막한 소개 글이 한 페이지를 메운다. 빨갛고 까만 몇 개의 기호와 주소, 전화번호, 영업시간 등 기본적인 정보가 전부다. 담백하기 그지 없다. 이 책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기 위해, 요리사들은 인생을 걸고, 때로 목숨까지 내놓는다. 책에 소개될 식당이 리스트가 발표되는 날, 전 도시의 요리사들과 언론, 미식가들이 신경을 한 데에 모으는 풍경이 벌어진다. 책의 정체는 ‘미쉐린 가이드’. ‘미슐랭 가이드’로 불려온 이 미식의 성서는 프랑스어로는 ‘기 드 미슐랭’, 영어로는 ‘미쉐린 가이드’, 그러니까 ‘미슐랭 가이드’는 틀린 표현이다.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이 프랑스 곳곳의 맛있는 음식으로 고객들의 자동차 여행을 고무시키고, 그로 인해 타이어를 빨리 마모시켜 판매를 증대하기 위해 1900년 처음 냈던 이 미식 가이드는 116년이 지나는 동안 단순한 외형 속에 깊고 거대한 함의를 담게 되었다. 이제 미쉐린 가이드는 한 도시의 미식 자산을 검증하는 척도요, 도시 미식계의 자부심을 확인하는 트로피다.

미쉐린 가이드는 20세기까지 유럽 주요 도시에 집중해왔지만 2005년 뉴욕을 시작으로 미국의 맛 지도를 그리기 시작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편이 나왔고 2007년에는 도쿄(현재 도쿄/요코하마/가마쿠라)를 시작으로 교토/오사카/고베/나라, 홍콩/마카오 등 아시아권에서도 발행되고 있다. 최근 싱가포르편 발간 소식에 이어, 서울편 발간 소식이 잇따랐다. 한국은 아시아 네 번째 발간 국가이며, 서울편은 미쉐린 가이드 글로벌 컬렉션의 27번째 에디션이다.

“미쉐린 서울판, 서울만의 기준으로 선정”

미쉐린 코리아가 10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2017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발간을 공표했다. 베르나르 델마스 미쉐린 그룹 부사장과 김보형 미쉐린 코리아 대표,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 대사가 연단에 올랐다. 미쉐린 가이드 월드와이드 디렉터 마이클 엘리스는 참석하지 않았다.

김보형 대표는 “오늘날 세계가 전통과 개성을 겸비한 한국의 음식 문화에 주목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원들이 서울에서 활동함을 알린다”며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발간을 알렸다. 그는 “미쉐린에서는 타이어 못지 않게 가이드 역시 중요한 사업 분야다. 몇 년 동안 강력한 의지로 진행해온 일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며 소감을 밝혔다.

미쉐린 가이드 사업부 아시아 태평양 총괄이기도 한 델마스 부사장은 “길거리 음식부터 궁중 요리, 그리고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까지 한국은 다채로운 음식 문화를 가졌다. 미쉐린은 세계 음식에 대한 관심과 존중으로 한식의 발달을 지켜봐 왔으며, 최근 한류의 확산과 한식의 세계적인 인기에 힘입어 미쉐린 가이드 서울판 발간을 결정하게 되었다. 한국의 미식가뿐 아니라 외국 관광객과 비즈니스 여행자를 유치할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페논 대사는 “‘미식의 성서’로 통하는 미쉐린 가이드가 한국의 미식가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라 확신하며 한국의 음식 문화가 미쉐린 가이드에 의해 재조명될 수 있으리라 본다”며 “미식을 통해 한국과 프랑스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며 기대를 표시했다.

미쉐린 가이드는 우선 식당을 정하는 방식부터 살펴 봐야 한다. 브래들리 쿠퍼가 미쉐린 별을 회복하려는 요리사로 분한 영화 ‘더 셰프’(2015)는 영화적 과장이 많았지만 결코 허구는 아니었다. 부모에게도 정체를 밝혀선 안 되는 평가원들이 도시의 식당을 다 다녀본다. 정체를 밝히지 않으니 당연히 여타 랭킹이나 가이드북과 달리 음식값도 모두 지불한다. 식당은 미쉐린이 다녀갔는지 안 다녀갔는지 끝내 모른다. 리스트 발표 당일이 돼서야 안다. 식당으로 전화가 걸려 온다. 전화가 늦을수록 “내년엔 위험하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요리사들 사이의 ‘카더라’도 있지만 진실은 며느리도 모른다. 실제 뉴욕의 한 평가원은 익명의 인터뷰에서 “미 중앙정보국(CIA)과 거의 같은데 훌륭한 음식을 먹는다는 점이 차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 철저한 비밀주의가 미쉐린 가이드의 핵심적인 영업 전략이다. 권위와 정통성, 그리고 막대한 영향력을 116년째 지킬 수 있는 이유다.

서울에서도 선정 방식은 같다. 지난해 6월 이미 평가원들이 평가를 시작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미쉐린 코리아는 공식적으로 이날 발표 이후부터 평가단 운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식당 평가는 물론 디지털 파트너 협의 등을 마친 후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의 이름으로 영어판과 한국어판이 책과 디지털 형태로 연내 발간될 예정이다.

평가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위해 미쉐린 정직원으로 고용돼 6개월 이상의 강도 높은 교육과 도제식 견습 기간을 거쳐 활동하게 되는 미쉐린 가이드 평가원들은 국적이나 성별 등에 관한 정보가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이제까지 아시아 지역 평가원 중 한국인은 없었으나, 서울판 발간을 위해 신규로 채용한 한국인 평가원이 있다는 루머는 사실로 확인됐다. 베르나르 델마스 미쉐린 가이드 사업부 아시아 태평양 총괄 부사장은“평가단은 내국인과 외국인이 팀을 이룬 인터내셔털 팀이다. 혹시 식당에서 그런 조합의 손님들을 만나면 수상하게 봐달라”고 웃으며 말했다. 단, 전 세계 평가원이 다양한 지역을 커버하기 때문에 정확한 국적 비율은 밝힐 수 없다는 것이 미쉐린 코리아 측의 설명이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미쉐린 가이드 서울' 기자간담회에서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대사(왼쪽부터), 미쉐린 그룹 베르나르 델마스 부사장,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 비벤덤, 미쉐린코리아 김보형 사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미쉐린 가이드 서울' 기자간담회에서 파비앙 페논 주한 프랑스대사(왼쪽부터), 미쉐린 그룹 베르나르 델마스 부사장,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 비벤덤, 미쉐린코리아 김보형 사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쉐린의 또다른 매력 ‘빕 구르망’

레스토랑에 대한 세세한 평가 기준 또한 비밀 원칙이지만 다섯 가지 대 원칙은 전 세계 공통이다. 첫째 요리 재료의 수준, 둘째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셋째 요리의 개성과 창의성, 넷째 가격에 합당한 가치, 마지막으로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이다. 한국의 음식문화를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델마스 부사장은 “전 세계 어떤 음식 문화권에서나 동일하게 지켜져야 하는 기본적인 원칙”이라고 답했다.

미쉐린 가이드가 공인한 최고의 레스토랑이 받게 되는 3 스타.
미쉐린 가이드가 공인한 최고의 레스토랑이 받게 되는 3 스타.

미쉐린 별을 서울이 얼마나 가져올 것인가는 누구도 단언하기 힘든 부분이다. 다만 3스타가 많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적으로 3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은 50여 곳에 불과하다. 1스타가 가장 많고, 2스타부터 급격히 수가 줄어든다. 뉴욕, 도쿄 등 타 도시에서도 별의 수는 가파른 피라미드꼴이다. 3스타는 ‘요리가 매우 훌륭하여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 2스타는 ‘요리가 훌륭하여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 1스타는 ‘요리가 훌륭한 식당’에 주어진다. 요리가 훌륭한 식당은 흔하다. 일부러 찾아갈 만한 식당도 흔하다. 하지만 단지 그 음식을 먹기 위해서만 서울로 여행을 오게 할 만한 레스토랑이 몇 개나 될 지, 혹은 존재하는지는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부분이다.

합리적 가격대의 대중적 식당에 부여되는 비벤덤.
합리적 가격대의 대중적 식당에 부여되는 비벤덤.

별만 중요한 게 아니다. 미쉐린의 별 바깥엔 빕 구르망(Bib Gourmand)도 있다. 미쉐린 타이어의 마스코트인 비벤덤(Bibendum)을 줄인 ‘빕’에 ‘먹보’라는 뜻의 ‘구르망’을 붙인 이 파트는 평균적인 도시 생활자가 적정한 가격으로 기분 내 즐길 수 있는 식당들을 소개한다. 대략 두 가지 코스의 요리와 와인 한 잔 혹은 디저트가 포함된 식사다. 파리에선 35유로, 뉴욕에선 40달러, 도쿄에선 5,000엔이 상한이다. 한국의 가격 기준은 미정이다.

이 섹션에서 파인다이닝에 속하지 않는 캐주얼한 레스토랑과 술집들이 다뤄진다. 지역색에 맞춰 독특한 음식문화를 다루기도 한다. 이를테면 2014년부터 대영제국&아일랜드 편에서는 술의 고장 아일랜드의 개스트로펍 에디션이 별도로 소개되고 있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연내 발간을 앞둔 싱가포르에서도 지금 ‘호커센터’(싱가포르의 독특한 야외 푸드코트 문화)가 소개될 것인지를 놓고 들뜬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미쉐린 측은 현재로서는 서울편 발간에만 전력을 다한다고 밝혔지만 추후 서울의 스핀오프가 나온다면 어떤 음식 문화가 별도 섹션이 될 지 역시 관전 포인트다. 해외 인기를 고려한다면 단연코 ‘코리안 비비큐’, 그러니까 고깃집을 예측할 수 있다. 삼겹살과 소맥, 그리고 다양한 기본반찬에 대한 외국인들의 사랑이 대단하다. 미쉐린 가이드는 흔히 고가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만 소개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책 한 권으로 한 도시의 음식 문화 전체를 조망한다. 서울의 밥상 전체가 검토되고 압축되어 미쉐린 가이드에 실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역사와 전통의 미쉐린 가이드라 한들 서울은 어디까지나 새로 탐사하는 낯선 도시다. 평가의 공정성이나 기준 이전에, 평가 대상 리스트부터 잘 선별되어 있어야 모두가 수긍하는 평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미쉐린 코리아 측에서는 수석평가원과 수석편집자가 상의해 서울을 여러 지역으로 나눈 후 각 담당 지역 내의 식당을 방대하게 조사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한국인 평가원도 이 과정에 참여한다. 지역을 나눈 이후엔 평가원들이 실제로 식당에 가기 전, 잡지와 신문뿐 아니라 블로그까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사전 조사 작업을 면밀히 진행한다. 그 결과를 놓고 이후 평가원이 방문할 식당의 리스트를 추리는 방식이다. 따라서 서울의 모든 식당이 한 번은 리스트에 오르고 몇 번의 필터를 통해 걸러지는 동안에 제외되기도 하고, 빕 구르망에 분류되기도 하고 별에 가까이 가기도 하는 셈이다. 참고로 프랜차이즈 식당에 대해서는 각 지점을 개별 평가한다.

미쉐린 이후 서울서 무슨 일이 날까

지난 몇 해간, 특히 작년 한 해 동안은 기정사실에 가까운 소문들이 돌 정도로, 서울의 미식계 역시 미쉐린 가이드의 행방에 몇 년 간 큰 관심을 쏟아왔다. 지난해 11월 30일 공식화되어 올 하반기 미쉐린 가이드 발간을 앞두고 있는 싱가포르의 프렌치 셰프 세바스티앙 레피노아는 이렇게 말했다. “싱가포르에 미쉐린 가이드가 들어온다는 것은 굉장한 뉴스였다. 미쉐린 가이드가 나오면 그 도시와 요식업계에 대한 세계적인 주목도가 높아진다. 싱가포르 레스토랑과 요리사에게 크게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서도 같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파리, 모나코, 홍콩 등지에서 미쉐린 ‘스타워즈’를 이미 겪어본 그의 프렌치 레스토랑 레자미(Les Amis)는 최근 발표된 2016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12위에 랭크됐다.

미식계 안팎에서 가장 기대하는 것은 한식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다. 업계에서는 이미 한식 분야가 강세를 드러낼 것이라고 단정하는 분위기다. 국내에 프렌치, 이탈리언, 중식, 일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식이 있긴 해도 비교 대상은 서울의 경쟁 식당이 아니라 본토의 재료와 문화적 재산을 맘껏 사용하는 현지 식당이다. 일본에서 프렌치, 미국에서 일식에 대한 별이 짠 것은 매년 리스트에서 드러나는 경향이다. 종주국과 같은 높은 기준이 적용되는 외국 음식보다 한식이 유리한 것이 당연하다. 한식의 강세를 예측하는 것은 최근 전 세계적인 발효 음식 트렌드와 지난 몇 년 간 급격히 높아진 한식의 위상도 한몫 한다. ‘본토에서 맛보는 한국 음식’이라는 홈그라운드 어드벤티지를 기대하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에는 청담동 모던 한식 레스토랑 밍글스(15위)와 정식당(22위), 신라호텔 한식당 라연(50위)이 올랐다. 2014년 정식당이 최초로 20위로 진입한 이후 빠르게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미쉐린 2스타를 유지 중인 임정식 셰프의 뉴욕 레스토랑 ‘정식’을 포함해 해외에 정착한 유학파와 2세 셰프들의 활약으로 각지의 미쉐린 리스트에서 한식 레스토랑의 별을 찾는 일도 어렵지 않게 됐다. ‘본 아페티’, ‘푸드 리퍼블릭’ 등 음식 관련 유력 매체에서 활동 중인 미국 칼럼니스트이자 한식 팬인 매트 로드바드는 강호동 백정 맨해튼 지점 셰프 홍득기와 함께 2년 간 미국 각지의 코리안 타운을 답사한 요리책 ‘코리아타운’을 냈고, 유튜브 스타 ‘망치’의 한식 수업은 100만 건 조회를 기록 중이다. 미쉐린 가이드의 서울편 발간 소식은 한식이 한 번 더 세계적으로 도약할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전망된다.

미쉐린코리아 김보형 사장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쉐린 가이드 서울'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쉐린코리아 김보형 사장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쉐린 가이드 서울'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도 호텔ㆍ레스토랑도 환영 분위기

그래서 어쩌면 미쉐린 가이드를 가장 고대하던 것은 정부일 것이다. 2013년 6월 11일 ‘농식품부-문체부 협력을 통한 음식관광 활성화 추진 계획’에 따라 농식품부와 문체부 사이에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음식관광 활성화를 골자로 하는 이 사업 계획 중 하나로 일찍이 미쉐린 레드 가이드 발간 추진이 포함돼 있었다. 민간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보니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기보다는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왔다는 것이 문화체육관광부 당국자의 조심스러운 언급이다. “음식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더 없이 좋은 기회라고 본다. 발간이 확정된 후 반응을 봐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미쉐린 가이드와 협업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볼 계획이다. 2011년 미쉐린 그린 가이드(미식 이외 부분을 망라하는 다른 버전의 미쉐린 가이드로, 레드 가이드와 구분되는 녹색 표지) 발간 때 광고 게재를 했던 사례가 있다. 레드 가이드가 나올 때도 그런 형태가 되지 않을까 한다.” 김보형 사장 역시 “아직까지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지원은 받지 않았지만 미식 관광 활성화를 위해 서로 협력해 나갈 용의가 있다”는 말을 남겼다.

호텔, 레스토랑 등 업계에서는 오래간 소문을 견디며 기다려온 만큼 환영하는 분위기다. 동시에 너무 들뜬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는 침착함도 엿보인다. 호텔신라는 “갑자기 미쉐린 가이드를 의식해서 시험준비 하듯 안 하던 일을 하기보다는 이제까지 해온 대로 한국 대표 호텔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원래 잘해온 것을 쭉 잘하는 방향으로 가려 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긴장한 모습도 엿보인다. 한 호텔 관계자는 “이제껏 한국 레스토랑 랭킹이나 가이드는 없었던 게 아니었지만 영향력이 미미했다. 대부분 무시하고 있었다고 봐도 될 정도다. 하지만 미쉐린 가이드라면 얘기가 다르다. 국내에서의 평가와 다른 국면의 평가로 인해 기존의 호텔 등급이 재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쉐린 가이드는 이제껏 한국 시장 안에서의 협지적인 기준에서의 평가와 동시에 세계 공통 기준에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다. 기자간담회가 열린 포시즌스호텔 서울 측은 “전통적으로 포시즌스의 큰 강점이 서비스에 있다. 포시즌스호텔 서울 역시 서비스 부문에 많은 연구와 투자를 해왔다. 그렇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손색 없이 응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애써 침착한 모습이었다. 간담회장에 마련된 핑거푸드는 적잖이 공들인 모습이었다.

‘미쉐린 가이드’라 쓰고 ‘터닝 포인트’라 읽는다

미쉐린은 우리만의 리그가 세계로 확장됨을 의미한다. 한국의 음식문화는 미쉐린 가이드가 그간 보아온 그 어떤 나라와도 다르다. 아마 서울로서도 미쉐린 가이드 앞에 민낯을 드러낸다는 것은 한국어만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영어만 하는 나라에 떨어진 것 같은 이물감으로 느껴질 것이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발간을 계기로 물 밖에 드러난 문제가 전문 서비스의 부재와 요리 인력의 전문성 결여다. 서양식 서비스의 요체를 담은 말은 호스피탤리티다. 쉽게 말해 식당에 들어선 순간부터 식사를 마치고 식당 문을 나설 때까지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도와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살림 방편으로 정글에 나온 여성들이 도맡았던 이 도시의 부엌은 강퍅했다. 겉으로 거칠면서도 속으로는 정성을 다해 밥을 짓던 것, 그것이 한국식 서비스 정신이요, 허리 굽은 시골 할머니로부터 내려온 한국적 호스피탤리티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간편해지는 동안 ‘정’은 사라지고 ‘욕’만 남았다. “호스피탤리티(hospitality)는커녕 호스탤리티(hostality)나 아니면 다행”이라는 자조적인 농담이 통할 정도다. 미쉐린 측은 별점제도는 서비스와는 완전히 별도로 운영된다고 강조했다. 별점은 음식만을 평가하고, 서비스는 포크와 스푼의 다른 픽토그램을 통해 평가한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과 캐주얼 레스토랑에서 16년간 두루 경력을 쌓은 한 식당 매니저는 이렇게 말한다. “유학파 요리사는 많은데, 유학파 서비스맨이 없다는 점이 이상하지 않은가? 직원에 대한 투자를 하기 쉽지 않은 요식업계 상황이 악순환으로 반복된다. 식당에서의 서비스 부문은 진입장벽이 낮고 동시에 임금도 낮다. 그렇기에 양질의 인력이 들어와 오래 버티기 힘든 구조다. 버틴다 해도 임대료 때문에 식당이 망한다. 일을 갓 시작하는 20대 서비스 인력이 좋은 서비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 역시 근본적인 문제로 작용한다. 이 점을 해결하려면 서비스 인력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한데, 국내 실정에선 서비스를 가르치는 대학이나 학원도 전무한 상황이다.”

비단 서비스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굳이 외국의 기준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국내 요식업계는 너무 문제가 많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은 어쩌면 서울의 요식업계가 체질 개선을 시작할 신호요 계기다. 이것은 사대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언어를 가진 음식문화와 어우러지려는 호의 어린 노력에 대한 이야기다. 양질의 요식업 인력을 키워낼 국가적 지원도 여전히 배고프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편 발간은, 한국이 그만큼 자랐다는 이야기이자 더 자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당근일지, 단지 채찍일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

이해림 푸드라이터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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