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가 이 표절 의혹을 대하는 자세는 일관되게 ‘쿨하게 덮어주기’였다.(…)여러 차례 불거져 나오던 표절 의혹을 덮고 덮다가 결국 한방에 와장창 무너져 내린 문학계의 이야기는 연극인들에게 전혀 타산지석이 될 수 없었던가 보다.”
서재형 연출가의 2014년작 ‘메피스토’를 비롯해 뮤지컬 ‘친정엄마’(고혜정 각색), 연극 ‘젊은 시절의 끝 되돌리다’(유성목 연출), 연극 ‘변신 이야기’(변정주 연출) 등 최근 몇 년 간 지속적으로 제기된 공연계 표절 의혹에 대해 “식민지 시대의 모방과 학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촘촘한 공생의 사슬에 매여 있는 공연계에서 서로 못 본 척, 안 본 척 서로 덮어주는 관행, 표절과 무단 복제를 창조 행위의 아류쯤으로 착각하는 관행”으로 논란의 당사자인 제작자 연출가는 물론 이를 검증하고 비판해야 할 평론가마저 쉬쉬하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계간 ‘연극평론’ 봄호는 특집 ‘연극과 표절’에서 서재형 연출의 연극 메피스토 표절 의혹(관련기사 ‘동영상시대 공연 표절의혹 확산’)을 분석하며 연극계 뿌리 깊은 ‘덮어주기 관행’를 비판했다. 괴테의 원작 ‘파우스트’를 개작해 악마 메피스토 펠레스를 여성 배우로 설정한 연극 ‘메피스토’는 2007년 루마니아 라두스탕카 시비유 극장에서 초연한 ‘파우스트’의 상당 부분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문원 연출가는 ‘연출 저작권, 표절과 창작의 경계’에서 “두 공연 모두 메피스토 역은 여배우였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의상, 노출, 목소리를 통해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는 중성적 혹은 자웅동체형 악마 이미지를 보여준다”며 부분적 유사성을 지적했다. 연극 파우스트에서의 돼지가면을 ‘메피스토’에서 그대로 차용한 것 역시 “각색 작가는 파우스트 한 구절을 무대화 한 것이라고 했는데 파우스트 원작에서는 5장 술집에서 메피스토가 마법을 부려 식탁에서 와인을 쏟아내자 모두가 미친 듯 마시며 ‘마치 오백 마리의 돼지를 잡아먹듯이 기뻐 미치겠구나’라며 합창하는 대목이 원전의 유일한 돼지 언급으로 보인다”며 “이 한 구절을 근거로 인간의 색정과 탐욕을 형상화하는 돼지의 오브제와 가면이 두 공연에서 동일하게 등장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무대 디자인의 유사성 ▦극 중반부 아이들의 코러스 동선 ▦원작의 방대한 분량 중 파우스트와 그레첸 비극에 집중한 점 등은 “모사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거나” “두 공연 전체 영상과 대본을 면밀히 대조해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메피스토’ 표절 의혹에서 진짜 문제는, 진위 여부를 떠나 이를 대하는 제작사와 연출가의 태도다. 목수정 작가는 ‘표절보다 더 아픈 것은 침묵이다’에서 “작품을 제작한 예술의전당은 자신들이 공동 책임져야 할 이 사안을 ‘연출가에게 (표절 의혹을)문의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모호한 말로 지나갔고, 뒤이어 해당 연출가와 (다음 작품)작업을 진행한 국립극장 측도 “(섭외 전)표절 의혹을 들었으나 해당 작품을 보진 못했다”고 밝히면서 침묵의 카르텔의 굳건한 일원임을 밝혔다”고 지적했다.
이진아 평론가 역시 표절 의혹을 받는 연출가가 “(두 작품을 모두 본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이)두 작품이 다른 작품인데 왜 대응하냐고 말씀하셔서 일일이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는 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며 “이런 논리는 지난해 신경숙 ‘우국’ 표절 논란에서 내용과 구성에서 매우 다른 작품이라고 반박해 대중의 빈축을 샀던 창비의 대응을 그대로 연상시킨다”고 비판했다.
연극계 중견 연출가들의 표절 논란은 잊힐 만 하면 제기되는 문제였다. 20년 전인 1997년 이병훈 연출의 연극‘홀스또메르’가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러시아 대가 게오르기 톱스토노고프의 대표작 ‘어느 말의 이야기’를 의상, 분장, 무대 장치, 소품, 무대 디자인, 연출 콘셉트와 동선, 배우 동작의 디테일까지 베낀 “레플리카에 가까운”(이진아) 작품으로 표절 논란이 파다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해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휩쓸었다. 지난해 표절 의혹에 휩싸인 서재형 연출가 역시 지난해 보란 듯이 히서연극상의 기대되는 연극인상을 받았다.
이진아 평론가는 “창작자, 기획자, 비평가 모두 합심해 선을 그어버린다. 이것이 논쟁이 부재하는, 제 자신의 본 모습을 꺼내 보이기 거부하는, 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의 기회조차도 두려워하는 비겁한 우리 연극의 현주소”라며 “비전과 추문의 시대를 벗어나 비평과 논쟁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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