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회사 차려 재직확인도 통과
실무 맡은 은행들은 확인에 소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마련된 국민주택 전세자금 대출제도의 허술함을 악용해 10억여원을 빼돌린 사기단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사전에 공모한 대출신청자들에게 허위 서류를 은행에 제출하게 하고 국민주택 전세자금 12억원을 대출받게 한 사기조직 총책 김모(44)씨 등 2명을 사기혐의로 구속했다고 9일 밝혔다. 허위 전세계약서 등을 이용해 자신의 명의로 대출을 받은 가짜 세입자들과 대출 사기에 쓰일 줄 알면서도 전세임대계약을 맺은 집주인 등 36명도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유령회사 3곳을 차려놓고 모집책들이 데려 온 대출신청자들을 이 업체에서 근무하는 것처럼 재직증명서와 근로소득원청징수서 등을 가짜로 작성했다. 대출신청자들은 임대인 모집책들이 모집해 온 집주인들과 가짜 전세계약을 맺은 뒤 이를 이용해 2014년 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13회에 걸쳐 최소 6,000만원에서 최대 1억3,000만원까지 총 12억원의 전세자금을 불법으로 대출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 대출제도는 일정 서류를 갖추고 심사를 통과한 무주택 서민들에게 전ㆍ월세 보증금 대출의 90%까지를 보증해주는 제도다. 게다가 대출자가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 국민주택기금이 보증 비율만큼 갚아준다. 은행들은 자기 책임이 적은 만큼 확인에 허술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 일당은 일부 은행이 대출신청자들의 재직 여부를 확인할 때 전화통화만으로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등 제도의 빈틈을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화가 올 경우 유령업체의 관리자들이 대신 전화를 받아 “근무하고 있는데 지금은 출장 중”이라고 답하는 식으로 현장실사를 피했다. 가짜 전세계약서는 공인중개사에서 건당 30만원씩을 지급하고 작성했다. 이렇게 불법 대출받은 돈은 총책과 모집책이 10%, 집주인과 가짜 세입자(대출신청자)가 각각 45%씩 나눠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대출신청자들은 애초에 돈을 갚지 않을 생각으로 범행에 가담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달아난 서류작성책 백모(37)씨 등 18명을 전국에 지명수배하고, 이번에 검거한 38명의 인적사항을 한국주택금융공사에 통보해 대출금을 환수하도록 할 방침이다. 경찰관계자는 “국민주택 전세자금 대출 시 재직 여부 확인을 강화하고 업체의 실적증빙서류 등을 반드시 제출 받아 심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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