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힘 더 키운 노동개혁
사업장의 또 다른 갈등 요인
정부는 ‘좋은’ 사용자 늘려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요즘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파견법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을 겨냥해 “노동개혁을 방치한 채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외치는 것은 모순이자 위선”이라 하고, 노동법 처리를 요구하며 기자들 앞에서 눈물까지 보였다. 정치인이 이용하는 국회 정론관에서 현역 장관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하며 국회를 압박했다. 감정 노출을 꺼리고 화가 나도 꾹 참는 공무원의 일반적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이런 감정 표출을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장관의 거침없는 태도가 사용자에게는 정부의 노동개혁 조치를 거칠게 적용하라는 신호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걸리는 것은 1월 말 시행에 들어간 통상해고지침과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지침이다. 통상해고지침은 성과가 낮은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고,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지침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노조나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지 않고도 직원에게 불이익이 되는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시행된 지 겨우 한 달 반 밖에 안돼 그 결과를 살피기에는 이르지만 사용자의 권한이 이전보다 대폭 커진 것은 사실이다.
정부가 상반기중 내놓을 단체협약지침에는 노조가 인사권 및 경영권에 관여하는 조항을 단체협약에 담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구조조정이나 직원 인사 및 배치 등 경영과 노동 영역에 함께 속하는 게 적지 않은데도 노조가 이들 문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사용자의 힘을 지금보다 더 키울 게 분명하다.
파견법 개정안에도 ‘나쁜’ 사용자를 만들 요인이 있다. 개정안의 골자는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자 그리고 6개 뿌리산업의 파견을 허용하는 것이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일자리 창출, 기업 경쟁력 제고, 인력난 해결, 노후 빈곤 해결 등 일석사조(一石四鳥)의 묘수라고 할 정도로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이다. 고령자의 정규직 취업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파견직으로라도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정부 논리에도 명분은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 문제를 다른 측면에서 접근한다. 정규직이 하던 일을 파견직이 대체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정부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도 파견 허용 업무 확대에 따른 인력 수요 가운데 13%는 기존 상용직 근로자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했다. 사용자가 정규직을 채용하는 대신 임금도 낮고 해고도 쉬운 파견직을 쓸 것이라는 뜻이다.
이런 우려가 근거 없이 나온 것이 아니다. 노동부가 지난해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는 통상해고지침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한 뒤 업무성과 부진 등을 이유로 한 해고구제신청이 급증한 것이 좋은 예다. 민주노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저성과 해고구제신청 건수는 183건으로 2013년에 비해 27%나 증가했다. 정부 가이드라인에 불과한 지침을, 그것도 시행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만들겠다고 예고만 했을 뿐인데도 사용자들이 이렇게 직원 해고를 늘린 것이다.
물론 어려운 가운데서도 직원을 정규직으로 뽑고 임금을 많이 주며 근로조건을 좋게 하려는 사용자도 많다. 회사 사정이 악화하면 고통을 먼저 떠안고, 직원의 근로조건이 나빠지면 승진 등의 방식으로 보상하려는 사용자도 있다. 정부가 할 일은 이런 ‘좋은’ 사용자가 늘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노동개혁 조치들은 사용자의 힘을 대폭 키워줌으로써 ‘좋은’ 사용자를 고립시키고 대신 정부 지침과 개정 노동법에 따라 직원 해고, 경영 독주, 비정규직 채용 등을 선호하는 ‘나쁜’ 사용자를 늘릴 가능성이 크다.
사용자들은 노조 때문에 못살겠다고 하지만 한국은 노조 가입률이 10%에 불과하다. 사용자와 가까운 노조도 적지 않으니, 일부 강경 노조가 있다 해도 전체적 노사 관계는 사용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노동개혁을 한다며 사용자 편향 조치를 통해 ‘나쁜’ 사용자를 늘리는 것은 또 다른 갈등요인이 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노동개혁의 취지와 목적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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