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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터 기선 잡고 안전하게 끌고간 알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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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터 기선 잡고 안전하게 끌고간 알파고

입력
2016.03.0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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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알파고 제1국 최종 기보.
이세돌과 알파고 제1국 최종 기보.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실력은 예상대로 무척 강했다. 아니 상상이상으로 막강했다. 그냥 기보만 봐서는 누가 이세돌이고 누가 알파고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초반부터 훌륭한 행마를 구사했다. 반면 이세돌은 알파고가 형세 판단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초반부터 바둑을 복잡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다. 알파고는 이세돌이 상변에서 다소 무리하게 싸움을 걸어오자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과감히 정면승부를 벌여 일거에 우세를 확립했다.

제1보(1~ 50)

이세돌과 알파고 1국은 초반부터 상변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다. 우상귀에서 8부터 17까지 평범한 정석 진행 다음 알파고가 18로 상변 흑 한 점을 협공한 데 이어 19 때 20, 21을 선수 교환한 다음 22로 모자 씌워서 오히려 먼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이때 이세돌이 23으로 붙인 수가 초반에 형세를 그르친 무리한 수다. 당시 이세돌이 알파고의 전투력을 시험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아니면 상대를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너무 심했다. 아마도 세계 정상급 기사들과의 대국이었으면 절대로 두지 않았을 과수였다.

즉각 알파고가 24, 25를 교환한 다음 26, 28로 흑돌의 허리를 댕강 끊어 버리자 단박에 흑이 곤란해졌다. 이세돌이 29부터 49까지 동분서주하며 간신히 상변 흑돌을 살렸지만 그 동안 백은 좌상쪽이 저절로 집으로 굳어졌고 중앙에서도 흑보다 백이 더 두터운 모습이어서 일찌감치 백이 우세를 차지했다. 프로들의 대국에서 이 정도라면 정말 처참하게 당한 모습이다.

바둑TV에서 이 바둑을 해설한 김효정 2단은 “알파고가 생각보다 훨씬 잘 두는 것 같다. 충격적인 결과다”라고 말했다. 유창혁 9단도 “흑이 기분 나쁘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한국기원 국가대표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이 바둑을 지켜본 신예강자 이동훈 5단(제42기 명인전 준우승자)은 “솔직히 말해 지금 상황에서는 무조건 백을 들고 싶다”며 23으로 ‘참고도’처럼 가볍게 수습하는 쪽을 택했더라면 좀 더 긴 바둑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2보(51~116)

이세돌이 심기일전, 51부터 반격에 나섰지만 한 번 우세를 장악한 알파고의 응수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68이 빈삼각의 묘수. 선수로 중앙을 응급처치하고 70부터 76까지 해서 우측 대마를 보강해서 백은 이제 걱정거리가 없어졌다. 반면 흑은 거의 회복불능 상태. 게다가 77이 어쩔 수 없는 보강으로 인내의 한수다.

80이 확실히 형세를 유리하다고 확신하는 두터운 보강이다. 이 시점부터 알파고의 착수는 안전 위주로 흘러간다. 좌하귀에서 백이 다소 느슨하게 두는 바람에 흑이 좌중앙을 크게 에워싸서 어느 정도 희망이 생겼다. 그 순간 알파고가 102로 우변에 침입한 수가 날카롭다. 알파고도 형세가 만만치 않다는 걸 의식한 듯 다시 맹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착수의 강약을 조절하는 솜씨에서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 고수의 면모가 느껴진다. “알파고가 오히려 이세돌을 상대로 흔들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백대현 9단)

103부터 115까지 흑이 우변에서 비교적 수습이 잘 됐지만 묘하게도 형세는 미세하나마 백의 우세가 지속되고 있다. 알파고가 116으로 좌상귀에 말뚝을 박았다. 사실상의 승리선언이다. 과거 이창호가 그랬듯이 계산서가 나온 모양이다.

이후 이세돌이 필사적으로 따라 붙었고 알파고는 최대한 안전 운행을 해서 어쩌면 역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왔지만 150의 시점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유창혁, 백대현, 홍민표 등 TV와 인터넷에서 생중계하던 해설자들이 일제히 “도저히 흑이 덤을 내기 어렵겠다”라며 이세돌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했다. 잠시 후 이세돌이 돌을 거뒀다. 186수 끝, 백 불계승. 컴퓨터와 인간 최고수와의 바둑 맞대결에서 컴퓨터가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역사적 순간이었다.

박영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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