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아래아 한글 파일 가지고도 바로 편집해서 책을 낼 수 있도록 만들 겁니다.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즉시 출판작업이 가능해집니다. 누구나 손쉽게 책을 낼 수 있는 거지요. 종이책은 여러 생산물 가운데 하나의 결과물입니다. 콘텐츠만 있으면 책은 물론 PC로도, 모바일로도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낼 겁니다.”
이기성 신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은 9일 취임 뒤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처럼 밝혔다. 지난달 이 원장 임명 당시 한국출판인회의는 ‘낙하산 인사’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이 원장은 “파리도서전도 안 가고 업무파악을 하려 한다”, “아직 공부를 더 해봐야 한다”며 최대한 자세를 낮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은근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 원장은 1960년대에 아버지 이대의(98) 장왕사 대표로부터 출판일을 배웠고 1970년대 이후엔 전자 출판쪽에 관심을 가졌다. 전자출판으로 동국대ㆍ계원예대 교수, 한국전자출판협회 부회장과 한국전자출판교육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 덕에 알고 지내는 출판계 원로들, 출판계에서 일하고 있는 제자들이 많다 했다.
자신의 성공담도 있다. 1991년에 ‘컴퓨터는 깡통이다’는 책을 내 300만부를 팔았다. 전자출판의 개척자를 자임하는 이답게 ‘컴퓨터는 깡통이다’ 5권짜리 전집이 12만원 하던 시절, 디스켓에 이 전집을 담아 1만원에 팔기도 했다. 원장을 뽑는 서류, 면접 과정에서 가장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대답했던 이가 자기 자신이라고도 했다.
출판인회의의 비판 성명에 대해 속이야 어쨌든 “나름대로 그들의 입장에 따라 그런 것이라 이해한다” “그런 비판도 있어야 나의 시야가 넓어지지 않겠느냐”고 너끈하게 받아넘기는 이유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출판을 산업이자 문화로 본다는 점에서 미묘하다. 전자출판은 산업적 인프라에 대한 것이지 콘텐츠의 질과 대중화라는 문화적 영역에 관한 얘기는 아니다. 이 때문에 이 원장의 임명을 두고 출판계에서 “출판계의 현실과 우려와는 동떨어진 인사”라는 불만이 나온다.
이 원장은 “전자출판이란 게 전자 책만 말하는 게 아니라 그에 맞는 콘텐츠 기획, 제작까지 모두 포괄하는 것”이라면서 “인프라가 깔리고 나면 당연히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스토리텔링해서 그 안에다 집어넣을 것이냐는 문제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두 문제가 다른 문제 아니라는 답변이다. 이어 이 원장은 “그 동안 출판계 인사들에게 강의를 해보면 문화적인 가치 부분에서 가장 크게 부딪혔던 게 사실이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오히려 크게 긍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하면서 “나이 일흔에 중책을 맡았으니 원 없이 일해보겠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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