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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 일상을 포위하다!

입력
2016.03.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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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아침 서울 노원구에 사는 최모(35ㆍ남)씨는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화살표부터 찾아 눌렀다. ‘하행’ 화살표가 깜빡 거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본격적인 출근길이 시작된다. 우측보행 화살표를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 전철역에 들어서니 승강장과 개찰구 표시 등 곳곳에 설치된 화살표가 눈에 들어 온다. 전동차로 이동하는 동안 최씨는 휴대폰의 화살표 버튼을 눌러가며 뭔가를 끊임없이 보고 공유하고 내려 받았다. 천정과 벽, 바닥까지 화살표가 와글거리는 환승역을 지나 광화문 네거리의 화살표까지 흘려 보내고 나서야 사무실에 도착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명령을 기다리는 또 다른 화살표, 최씨는 지체 없이 화살표를 움직이며 업무를 시작했다.

엘리베이터ㆍ도로ㆍ전철역 등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잔소리’

당신은 오늘 몇 개의 화살표를 접했는가. 평범한 직장인인 최씨의 경우 평소 하루 200개 이상의 화살표와 조우한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시야에 들어오지 못한 화살표는 그보다 훨씬 많다. 손가락의 변형된 모습인 화살표는 별도의 학습 없이도 인간이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기하학적 기호로 알려졌다. ‘언어 습득과 발달(하길종ㆍ국학자료원ㆍ2001)’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인간은 생후 10개월부터 방향을 가리키는 손가락 대신 지시 대상을 볼 수 있다. 화살표 대신 화살표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는 것은 인간의 능력인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넘쳐나는 화살표 속에서 올바른 방향 찾기가 오히려 쉽지 않은 세상, 잠시 걸음을 멈추고 화살표를 생각해 보았다.

지하철 환승통로부터 신호등, 매장 광고, 엘리베이터 버튼까지 시시콜콜한 잔소리처럼 화살표는 우리를 포위하고 지시한다. 새로운 교차로가 생기고 지하철노선이 거미줄처럼 복잡해질수록 더 많은 화살표가 필요하다. 늘어가는 화살표는 점점 더 수동적으로 변해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반영한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삶이 편리해질수록 화살표 없이는 목적지를 찾아 갈 수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 속에서 인간은 화살표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늘어나고

그만큼 현대인은 수동적으로 변해

화살표는 각종 디지털 기기 안에서도 존재한다. 업무를 보거나 소식을 나누고 여가를 즐기는 동안 우리는 쉴새 없이 화면 속 화살표를 누른다. 온라인 상에서 넘쳐나는 정보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표시하고 신속한 명령을 유도하는 데 화살표는 큰 역할을 한다. 공간보다는 시간적 개념 속에서 방향을 표시하고 지시한다는 점에서 거리의 화살표와는 다르다. 항상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재생버튼의 화살표는 오른쪽으로의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버튼을 누른 후 어떤 영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미래로의 진행을 예고한다. ‘이전’ 또는 ‘다음’버튼 역시 각각 현재의 화면보다 이전과 다음 화면을 보여 준다는 개념으로 화살표가 쓰인다. 화살표가 아래를 향한 다운로드와 위쪽을 향한 업로드(공유) 버튼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인 방향을 가리키면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시공간을 초월한 화살표의 세계를 빠져 나온 최씨는 또다시 거리의 화살표를 따라 이동한다. 너무 많아 혼란스러운 화살표 전람회를 거쳐 집으로 가는 길, 어느덧 ‘상승’ 화살표에 불이 꺼지며 엘리베이터는 현관 앞에 멈췄다.

★화살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①‘재생’버튼의 화살표가 오른쪽을, ‘이전(Back)’버튼은 왼쪽을 가리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책장을 넘길 때 이전 페이지는 왼쪽, 다음 페이지는 오른쪽을 넘기는 데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시각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는 오른쪽을 향한 화살표가 동쪽과 미래, 진행, 다음, 통과 등을 뜻하고 왼쪽은 서쪽, 뒤, 과거, 후퇴의 의미를 갖는다. 단순하고 추상적으로 표현된 심볼이 일관되게 쓰이면서 인지도가 높아지고 의미가 굳어지는 일종의 일반성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시각커뮤니케이션디자인에서 화살표의 의미작용에 관한 연구’(김지영ㆍ홍익대ㆍ2002)

②풍향계의 화살표는 바람의 흐름을 거스른다. 통념적으로 화살표는 진행 방향을 표시하지만 풍향계의 화살표만은 바람이 흘러가는 방향이 아닌 불어 오는 쪽을 가리킨다.

③일관성이 생명인 화살표도 있다. 나침반의 빨간 화살표는 자연 그대로의 조건 하에선 항상 북방(N극)을, 반대쪽은 남방(S극)을 가리킨다.

④수영 경기를 관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화살표 모양의 레이스가 펼쳐지곤 한다. 수영이 기록 경기인 만큼 물의 저항이 가장 적고 시야는 넓은 중앙 레인을 기록이 가장 좋은 선수에게 배정하기 때문이다.

⑤물리학에서도 화살표가 쓰이는데 두 개의 사선이 만나 이루어진 모서리 보다 기둥선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이 선의 길이로 힘의 세기를 표시하고 그 선의 시작점은 힘의 작용점을 나타낸다.

⑥일본의 한 지자체는 선거를 앞두고 빨강, 노랑, 파랑, 초록색깔의 화살표로 투표소를 알렸다. 그 결과 다른 지역보다 투표율이 높아졌다.

⑦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한 작가는 노란 화살표를 ‘성스러운 표식이며 믿음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는 여정’이라고 표현했고 독일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의 추상화를 비롯한 예술 작품에도 화살표가 등장하기도 한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kookilbo.com

신재훈 인턴기자(세종대 광전자공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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