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에 영성 여행을 다녀왔다. 뜬금없이 종교색 짙은 ‘영성'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겠다. 디자인의 최첨단을 기록하려는 여정엔 생각지 않게 케케묵은 고딕 성당과 수도원, 개신교회의 순례가 뒤섞였다. 우연하게 여행 첫 코스가 독일 튀링겐주의 작은 도시, 아이제나흐였다. 예전 동독과 서독의 구분선이 되어준 도시인 이곳은 서양사의 한 획을 그은 두 명의 인물과 관련을 맺고 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다.
아이제나흐에 있는 바트부르크 성에 갔다. 이곳에서 루터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융커 욕이란 이름으로 독일어 성경을 번역했다. 무려 11주 만에. 루터는 만인이 사제라고 주장했다. 신과 개인이 일대일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의 여파는 컸다. 종교개혁이야말로 현대미술과 패션 현상을 잉태한 자궁이었다. 한 사람의 생각이 사회 성원들의 태도를 빚는 거대한 담론이 될 때 혁신은 태어난다.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과 주변의 사물을 일대일로, 내 자신의 생각을 투영해서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위에서 내려오는 교의대로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고 말았겠지만, 루터의 생각이 바이러스처럼 번지면서 사물에 대한 자신의 감정, 느낌을 더 소중하게 느끼게 되었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미친 영향이다. 패션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패션현상이란 단어가 태어난 시점이 종교개혁과 르네상스의 중간쯤이란 사실이 궁금했다. 르네상스에 오면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권의 부흥과 ‘자유’의 감각을 만끽하게 해준 도시의 발전은 패션 현상의 잉태에 지태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으로 패션을 통해 하나뿐인 나를 표현하려는 인간의 탄생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개인과 개인이 만나고, 그 속에서 서로를 향해 자신을 표현하며 상대의 평가와 해석에 민감하게 된 건 루터의 덕분이다. 표현의 욕구는 옷차림과 장식에도 번졌고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거치며 인간의 패션은 정교하게 변모한다. 이 과정에서 트렌드란 현상도 태어난다. 묘사에서 표현으로 그 주제를 바꾼 현대미술도 이 종교개혁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변덕스러운 패션 현상의 탄생에 대해 논평한 이들이 꽤 많다.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도 “패션의 덧없는 변화가 인간에게 존중 받는 이유는, 새들이 깃털의 색과 구조를 바꾸어 암컷에게 사랑을 받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패션은 항상 과거와 현재의 구분선이다. 결과적으로 그 어떤 사회적 현상보다도 현재에 대한 강력한 느낌을 전달한다”고 말했다. 많은 사상가들의 생각 중 나를 사로잡은 건 20세기 초반, 독일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이론가였던 아우구스트 엔델이다. 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을 강타한 예술운동이었던 아르누보의 스타였다. 아르누보가 자연물, 특히 꽃과 식물 덩굴에서 따온 유연한 곡선을 특징으로 하는 장르였던 탓인지, 그가 논평한 패션에 대한 생각에도 꽃을 토대에 둔 것들이 많다.
“현학적인 사람일수록 패션을 일시적이라는 이유로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패션의 덧없음을 추구하는 것이 삶에 대한 범죄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패션은 사실상 삶 자체의 상징이다. 패션은 그것이 실제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을 계산하기보다 자신의 재능과 선물을 변덕스럽게 쏟아 붓는다. 자연은 수 만개의 씨앗을 도처에 뿌린다. 그 중 하나는 반드시 발아한다. 얼마나 지적인 낭비인가? 하지만 자연이 보여주는 영원한 시작과 다채로운 풍성함이야말로 패션을 유쾌하게 만드는 근거다.”
나는 이 말이 좋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나무들은 청신한 청록빛 이파리의 옷을 입는다. 영어표현에서 ‘Turn over a new leaf’, 자연이 새로운 이파리로 갈아입는 행위를 ‘마음을 일신하다’란 뜻으로 쓰는 것은 다른 데 이유가 있지 않다. 자연이 뿌린 수천의 씨앗 중 잉태될 하나의 씨앗을 위해 온 몸으로 축복하듯, 패션도 변덕스럽지만 수없이 제시된 유행 경향과 스타일들은 그 자체로 풍성한 삶의 표현이 아닐까? 그러니 만끽해보자. 패션의 질기디 질긴 생명력을.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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