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 첫 강의를 나갔다. 봄기운이 완연했지만 학생들은 고단해 보였다. “저희 학점 하루살이예요”라 자조하던 지난 학기 한 학생이 떠올랐다. 재미있는 걸 찾아서 하면 좋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럴 짬이 안 난다고 했다. 학점 관리에 아르바이트에 학원까지. 책은 늘 끼고 살지만, 읽을 시간조차 없다고도 했다. 내가 맡은 강의는 문학과 영화. 스스로 빠져 즐기지 않으면 기본조차 성립 안 되는 분야건만, 기계적인 패턴 안에서 잔기술만 익히려 드는 경우도 많이 봐오던 참이다. 마침 이번엔 1학년 수업. 학생들에게 공언했다. 일주일 중에 이 시간만은 노는 기분으로 즐기라고. 즐기되, 자기 안의 아픔이나 슬픔 따위도 발가벗듯 돌이켜 살펴보라고. 학점에만 연연하면 외려 학점 안 좋게 주겠다고. 세상이 알려주는 것 말고 자기 눈으로 발견한 것으로 스스로를 채워보라고. 난 아무것도 안 가르칠 테니 여러분 스스로 수업을 살리든 망치든 해보라고. 솔깃해하는 눈빛도, 저 아저씨 미친 거 아냐 하는 눈빛도 있었다. 반응이야 어떻든 자신을 열어젖혀 자기 언어를 찾게 하는 것 말고 내가 뭘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건 무의미해 보였다. 공허한 지식 창고 따위 폐쇄한 채 그들만의 말을 듣고 싶었다. 직업훈련소가 돼버린 대학이라면 데모라도 해서 바꿔보란 말은 하려다 말았다. 그러다 잘리면 어쩌냐고? 괜찮다. 백수 8단의 내공이 있으니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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