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원 벌려다 1,000만원 물게 생겼는데 도저히 형편이 안 돼요. 어떡하죠.”
6일 밤 11시 주머니 깊숙이 양손을 찔러 넣은 송모(64)씨는 2시간 동안 이어진 진술을 끝마치고 신발을 끌며 서울 용산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에서 걸어 나왔다. 한숨 섞인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연신 “운이 너무 안 좋았어”를 반복했다. 벌이가 충분하지 않던 송씨는 이날 저녁 3만원 더 벌겠다며 술 취한 손님 차량을 대신 운전하다 이곳 경찰서까지 오게 된 참이었다.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손님을 조수석에 태운 송씨가 시동을 건 아우디Q5 차량은 경기 과천 경마장을 출발해 오후 8시 30분 동작대교에서 서빙고역 방면으로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옆 차선으로 진입하려던 찰나 뒤에서 직진해 오던 차량을 들이받고 말았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재규어XF 차량이 멈춰서 있었다.
이 접촉사고로 아우디 운전석 차문은 움푹 파이고 재규어 앞쪽 우측 범퍼는 파손됐다. “저 정도면 수리비 견적은 1,000만원 정도지.”사고 조사를 담당한 경찰의 말에 송씨 눈앞은 더 캄캄해졌다.
차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서를 떠났고 송씨만 텅 빈 조사실에 홀로 남았다. 그들은 각자의 보험회사를 통해 보험 처리를 하기로 해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송씨는 사정이 달랐다. 대리운전업체 직원이었다면 업체가 가입한 보험으로 수리비 보상이 가능하지만 그는 업체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송씨는 하루 일당 6만원씩 받으면서 경마장 손님 주차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용직 근무자다. 오전 9시부터 일을 시작해 50대 정도 주차를 하고 나면 하루가 금방 간다. 이따금 단골 손님이 경마장 앞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면 대신 운전해 주는 ‘뜨내기’ 대리운전사 노릇도 한다. 베트남 출신 아내와 늦은 나이에 결혼해 얻은 열 살배기 아들까지 먹여 살리자면 주차요원 일당으론 부족해서다. 이날도 송씨는 단골 손님 부탁에 운전대를 잡은 터였다.
3만원짜리 대리운전이라 기분 좋게 출발했다 큰 돈을 물게 생긴 송씨. 그는 “1,000만원을 뒤집어쓸 판인데 아내와 초등학생 아들도 겨우 먹여 살리는 처지에 감당할 턱이 있나”라며 휴대폰에 저장된 아들 사진만 내려다봤다. 한참을 망설이던 송씨는 “어떻게 해서든 차주한테 선처를 부탁해 봐야겠다”며 차주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꼭 쥐고 돌아갔다.
용산서 관계자는 “차주와 대리운전자가 따로 합의해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송씨처럼 대리로 운전한 기사가 차주의 보험처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딱히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맹하경기자 hkm07@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