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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뭇사람을 속인 代價, 겨우 6,000만원

입력
2016.03.0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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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아이들 키를 키워 준다”며 거짓ㆍ과장 광고를 일삼던 회사들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키 커지는 효과를 입증할 객관적 자료나 근거가 없는데도, 식품을 먹거나 운동기구를 쓰면 키가 커진다며 허위 광고를 낸 것이다. 공정위가 이들 10개 회사에 부과한 과징금은 모두 합쳐 6,000만원. 그나마 과징금이라도 받은 업체는 3개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시정명령이나 공표명령 수준에 그쳤다.

허위ㆍ과장 광고에 대한 솜방망이 과징금은 계속 반복돼 온 문제다. 지난해 12월엔 광고를 조작한 다국적회사가 덜미를 잡혔는데, “화장품을 쓰니 피부가 좋아졌어요”란 식의 광고를 마치 이용자 후기처럼 속였다. 효능을 부풀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사실을 조작했는데, 이렇게 대놓고 거짓말 쳐도 과징금은 1억800만원에 불과했다. 한 자동차 수입업체는 달지도 않은 부품이 장착됐다고 광고했지만 받은 과징금은 1억4,900만원이었다. “천연암반수로 만들었다”며 거짓말을 한 소주업체에는 고작 6,800만원이 부과됐다.

경쟁정책(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를 규율하는 정책)에서 가장 앞서가는 나라라는 미국은 어떨까? 미국에서 공정위 역할을 하는 기관은 연방거래위원회(FTC)다. 최근 비슷한 사례를 살펴보면, FTC는 허위ㆍ과장 광고에 대해 다시는 거짓말을 할 생각이 들지 않도록 강력한 ‘철퇴’를 휘두른다.

그 중 하나가 2014년 다이어트 업체들의 허위 광고 사건. 이들 다이어트 업체는 “음식에 뿌려 먹기만 하면 된다”거나 “피부에 바르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효과를 부풀려 광고했다. FTC는 이를 ‘비과학적 광고’로 규정, 4개사에 총 3,400만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신기만 해도 살이 빠진다”고 국내에도 소개됐던 운동화 제조업체도 FTC의 철퇴에 제대로 맞았다. FTC가 “일반적인 운동화보다 살을 빼주고 근육을 강화시켜 준다는 주장이 사실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며 부과한 과징금은 5,000만달러였다. 2011년 리복 역시 운동화 과장 광고 때문에 2,500만달러의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FTC만 그러는 게 아니다. 연비를 조작한 폭스바겐으로부터 미 법무부가 받아낼 것으로 보이는 벌금은 최대 수백억달러(수십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고객을 속인 폭스바겐은 이제 일부 사업을 접는 수준을 넘어, 그룹 자체 존립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고객을 속여도 푼돈의 과징금을 내거나 “착오가 있었다”며 고쳐 버리면 그만인 한국과 대비된다. 미국은 이처럼 기업 부정행위를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강하게 응징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이유로 미국을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로 평가하지 않는다.

신뢰는 시장경제 성숙도를 파악하는 척도 중 하나다. 기업의 고의적 거짓말을 봐 주거나 별 것 아닌 듯 넘기면 그 피해는 국민 전체가 고스란히 짊어진다. 경제주체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시장 참가자가 거래 상대에게 의심을 품으면, 불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그 비용은 시장 전체가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고객과 기업이 소통하는 수단인 광고를 조작한 행위에 대해서는 시장 신뢰를 망가뜨린 책임을 물어 매우 엄중한 제재를 가해야 마땅하다.

물론 위에서 예를 든 미국 기업에 비해 국내 기업 매출 규모가 작아 과징금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과징금 수준은 ‘재발 방지’라는 측면에선 전혀 효과가 없다. 뭇사람을 속인 대가가 겨우 수천만 원이라면, 이건 거의 “거짓말 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과징금 부과 과정에서 관련법이 규정하는 범위를 최대한 활용하거나, 필요하다면 과징금(관련 매출의 2% 이하)을 상향 조정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영창 경제부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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