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시즌만 되면 보건소마다 하루 수백 명이 몰려 북새통이다. 무료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예방접종 대란’을 막기 위해 대책을 내놨다. 그 동안 65세 이상 고령인의 무료 독감 예방접종은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만 가능했는데 민간 병ㆍ의원에서도 할 수 있도록 바꾸었다. 보건소와 보건지소에 공보의 1~2명만 배치돼 공보의 한 사람이 하루 종일 예방접종만 하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예방접종 격무에 시달리면서 혹시 일어날지도 모를 의료사고 가능성에 가슴을 졸이던 공보의들은 반색했다.
하지만 정부 바람과 달리 예방접종 대란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공보의 가운데 10% 정도는 하루에 1,000명 이상 예방접종에 매달리고 있다. 최근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대공협)가 예방접종한 경험이 있는 2~3년 차 공보의 2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하루 100건 이하 32%, 100~200건 31%, 300건 이상 36%였으며, 10%는 1,000명 이상이었다.
또한, 예방접종 업무가 과중하다는 공보의도 절반이나 된다. 고령인 무료 독감 예방접종이 민간 병ㆍ의원에 위탁되기 전 실시한 조사에서 80%가 예방접종 업무가 과도하다고 답한 것보다 30%p 정도 줄기는 했다. 예방접종을 1명 하는데 2분 정도 필요한데 오전 6시부터 퇴근하는 오후 6시까지 줄곧 이 일만 매달린다. 이런 까닭에 예방접종 전에 반드시 필요한 예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다. 환자안전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아직까지 예방접종으로 인한 의료사고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전국을 강타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최근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지카바이러스, 뎅기열 등 다양한 전염병의 발호를 막으려면 공보의가 예방접종에만 매달리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꿔야 한다.
김재림 대공협 회장은 “예방접종의 민간 병ㆍ의원 위탁으로 접종건수가 다소 감소했지만 여전히 무리한 예방접종을 하고 있는 지역이 존재하는 만큼 접종인원의 조정과 업무분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회장은 “특히 모든 무료 예방접종을 민간 병ㆍ의원에 이전하고 보건소에선 유료 접종, 의료 급여 수급자나 장애인 등의 접종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일이 없어야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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