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 여성이 안면홍조, 우울증 등 갱년기 장애를 줄이기 위해 선택하는 호르몬 대체요법(HRT)이 오히려 우울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김도훈 고려대 안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팀은 국민건강영양조사(2010~2012년)를 바탕으로 폐경 여성 2,286명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밝혀졌다고 했다. 폐경 후 호르몬 치료를 받는 여성의 우울증 발생 위험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2.2배 높았다.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도 호르몬 치료를 한 여성이 1.4배 높았다.
김 교수팀은 폐경 여성(평균 연령 56세)을 직접 인터뷰해 이들의 운동량, 영양상태, 소득, 우울증 여부 등을 조사했다. HRT를 받는 폐경 여성은 15.9%가 의사로부터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HRT를 받지 않는 여성의 우울증 진단율은 7.3%에 그쳤다.
HRT를 받는 여성의 26%가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지 않았지만 ‘2주 이상 우울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HRT를 받지 않은 여성의 우울감 경험률은 19.3%였다. HRT를 받는 여성의 우울감 경험률이 HRT를 안 받는 여성보다 1.4배가량 높게 나타난 것이다.
폐경 뒤 HRT를 받는 여성은 22.6%가 ‘자살을 생각해 본 적 있다’고 답변했다. 이는 HRT를 받지 않는 여성(16.5%)보다 1.4배 높은 수치다. 자살 생각 비율은 폐경 뒤 HRT 기간이 길수록 높았다. HRT를 받지 않은 여성에 비해 HRT 기간이 각각 5년 이하, 5~10년, 10년 이상인 폐경 여성의 자살 생각 비율은 1.2배, 1.4배, 2배였다.
특히 폐경 뒤 10년 이상 HRT를 받은 여성은 3명중 1명꼴로 자살을 생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장기간 HRT를 받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자살 예방 교육, 홍보가 시급함을 시사한다.
현재 국내 폐경 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갱년기 증상 완화를 위해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 단독 또는 황체호르몬(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을 함께 주입하는 HRT를 받는다.
김 교수는 “이 가운데 프로게스테론이 우울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프로게스테론 부작용으로 우울증, 자살 충동이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또 “HRT를 받은 여성이 만성 질환을 오래 앓을수록 우울증, 자살 충동 비율이 높았다”며 “폐경 뒤 HRT를 오래 받은 여성일수록 안면홍조, 식은 땀, 심한 감정 기복 등 갱년기 증상을 장기간 겪는 것에 지쳐 우울증, 자살 생각에 빠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기분장애학회지인 '기분장애저널(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최신호에 실렸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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