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이없는 실수 안 했는데
한 판이라도 진다면 알파고 승리
인간의 창의력, 감각 못 따라올 것”
“바둑의 낭만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9일부터 시작하는 구글 딥마인드사(社)의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와 대국을 앞두고 7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한국기원 대회장서 열린 제43회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시상식에서 “개인적으론 5대 0으로 이길 것 같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9단은 지난 1월 21일 명인전 결승 5번기 제4국에서 박정환 9단을 꺾으며 종합전적 3대1로 정상을 차지했다. 이 9단의 명인전 우승은 35ㆍ36ㆍ40회에 이어 네 번째다. 1968년 명인전 창설 이래 우승한 명인은 이세돌까지 8명에 불과하다. 이 9단은 한국일보ㆍ한국기원이 공동 주최하고 강원랜드가 후원한 이번 명인전 우승상금으로 5,000만원을 받았다.
이 9단은 이번 명인전 이전까지 박 9단에게 3연패를 당하는 등 컨디션 난조를 보였지만 결승 4국에서 역전승하며 3년 만에 명인 자리를 탈환했다. 그는 “알파고와 시합을 앞둔 상황에서 큰 상을 받아 기분 좋은 마음으로 대국에 임할 수 있게 됐다”며 우승 소감을 밝혔다.
이 9단은 명인전 결승대국 직전인 1월 14일 열린 제34기 KBS바둑왕전 결승 3번기 제3국에서 박 9단에게 져 우승 트로피를 내줬다. 새해 대접전에서 1승 1패 무승부를 기록한 셈이다. 이 9단은 “명인전 결승 직전 중국에서 큰 시합을 지고 와 상태가 그리 좋진 않았는데 박 9단이 양보해 준 게 아닌가 싶다”며 “내용상으로는 박 9단이 나보다 더 뛰어났다고 생각한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알파고와 대국을 이틀 앞둔 만큼 이날 시상식에는 국내 취재진은 물론, 외신들까지 일찌감치 자리하는 등 인공지능과 대결을 하게 된 이 9단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이 9단은 “컨디션이 나쁘진 않지만 중국에서 지고 와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면서도 “대국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앞서 5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17회 농심배 최종국에서 중국 랭킹 1위 커제 9단에게 패했다.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9일부터 15일까지 11, 14일을 빼고 다섯 차례 서울 광화문의 포시즌스호텔 내 특별 대국장에서 열린다. 승부와 관계 없이 5번 겨루게 된다. 알파고는 미국 서버에 들어 있어 알파고를 대신해 딥마인드 프로그래머이자 바둑 6단인 아자 황이 알파고의 수를 본 뒤 바둑돌을 놓는다.
이 9단은 심리적으로 안정을 취하는 데 가장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그는 “대국을 앞두고 특별히 준비하고 있는 것은 없다”며 “실수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쫓길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마인드 컨트롤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5대 0 또는 4대 1로 승리를 자신했던 이 9단은 “어이 없는 실수를 하지 않았는데 한 판이라도 내가 진다면 알파고의 승리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실수를 했을 때 얼마나 냉정하게 대처할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직까지 알파고의 실력은 베일에 싸여 있다. 알파고는 지난해 10월 유럽 챔피언인 중국계 프로기사 판후이와 대국에서 5승 전승을 거뒀다. 구글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 데미스 하사비스는 “알파고가 3,000만회의 대국을 학습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9단은 “알파고에 대한 데이터가 공개돼 있지 않아 현재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정선(定先ㆍ하수가 흑돌을 잡고 먼저 두는 것) 치수 정도 되지 않나 싶다”면서 “내가 약자라면 데이터가 필요하겠지만 강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첫 대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첫 대국으로 알파고를 90% 이상 파악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창의력과 감각을 기계가 따라오긴 힘들 것”이라고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9일 열리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 1국은 오후 3시부터 KBS 2TV와 유튜브를 통해 중계된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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