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열린 제88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작품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는 수상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상을 받은 뒤 처음 맞은 주말(3월4~6일), 미국 내 흥행 수익은 이전 주말(2월26~28일)보다 148.9%나 늘었다. 주말 흥행 순위도 21위에서 13위로 수직 상승했다.
‘스포트라이트’뿐만 아니다.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헝가리영화 ‘사울의 아들’도 수익이 9.1% 증가했고, 흥행 순위는 37위에서 30위로 올라갔다. 브리 라슨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룸’은 수익이 떨어졌으나 흥행 순위는 23위에서 20위로 상승했다. 감독상(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과 남우주연상(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을 차지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도 2계단 오른 흥행 순위 8위를 기록했다. 이른바 ‘오스카 효과’가 올해도 힘을 제법 발휘하고 있다.
국내 영화시장은 어떨까. 미국의 영화상이라고 하나 국내 극장가도 아카데미 기대 지수가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올해는 아카데미 수상 덕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한국도 오스카 대목 겨냥 개봉
지난 1월 아카데미 후보작이 발표됐을 때 미국 극장가는 술렁였다. 후보작들에 관객들이 몰리면서 시상식 이전부터 아카데미 효과가 나타났다. ‘레버넌트’는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뒤 미국 흥행 수익의 67%에 달하는 돈을 벌어들였다. ‘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카데미 후보작 명단에 이름을 올린 뒤 전체 수익의 59%에 해당하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국내에서도 아카데미 수상은 흥행 호재로 여겨진다. 유명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까지 커진 영화의 경우 수입계약서를 작성할 때 별도 조건이 종종 따른다. 아카데미 상을 받을 경우 수입가를 더 지불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수입가가 1만달러 수준인 예술영화의 경우 추가로 건네야 할 돈이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지명도 높은 배우가 출연하고, 유명 감독이 연출한 ‘아카데미용’ 영화의 경우 오스카 트로피를 받게 되면 원래 수입가의 2배까지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아카데미 수상이 돈이 되기 때문에 국내 영화 수입사들도 아카데미 대목을 노려 수입작의 개봉 일정을 조율한다. 올해는 ‘스포트라이트’가 아카데미 시상식을 눈앞에 둔 2월24일 개봉했고, ‘사울의 아들’은 25일 극장가에 첫 선을 보였다. ‘스포트라이트’의 수입사 더쿱의 박동현 과장은 “‘레버넌트’ 등 다른 영화의 작품상 수상을 예견한 이들이 많았으나 우리가 받아보는 해외 정보는 달랐다”며 “‘스포트라이트’의 수상을 확신했기에 아카데미 시상식에 맞춰 개봉일을 정했다”고 밝혔다. 골든글로브상과 영국 아카데미영화상 등 여러 여우주연상을 휩쓸고 있는 ‘룸’은 수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지난 3일로 개봉일을 정했다.
‘스포트라이트’와 ‘룸’은 아카데미의 주목을 받기 전 수입이 결정된 영화들이다. 수상 가능성에 대비한 별도의 조건 없이 영화의 국내 상영권을 얻었다. ‘스포트라이트’는 촬영에 들어가기도 전인 2014년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룸’은 지난해 2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각각 구매 계약을 맺었다. 국내에서 아카데미 수상을 발판 삼아 흥행에 성공한다면 수입사가 수익을 오롯이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지닌 셈이다.
올해는 ‘귀향’ 돌풍에 수상 효과 급감
하지만 아카데미 수상 작품들의 국내 흥행 수치는 오히려 떨어졌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스포트라이트’는 지난 주말(4~6일) 5만6,455명이 관람해 이전 주말(2월26~28일) 관객(5만9,452명)보다 줄었다. 주말 흥행 순위가 10위에서 8위로 상승한 점에 그나마 위안을 삼아야 할 처지다. 알리시아 비칸데르에게 여우조연상을 안긴 ‘대니쉬 걸’은 1만3,457명에서 8,176명으로 줄었고, ‘사울의 아들’은 5,073명에서 2,611명으로 급감했다. ‘룸’은 개봉 주말 3만5,843명이 봐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카데미 수상작들이 덕을 못 보는 이유로는 ‘귀향’의 흥행 돌풍이 꼽힌다. 2월과 3월은 작은 영화들이 경쟁하는 전통적인 비수기다. 고만고만한 영화로 여겨졌던 ‘귀향’이 260만4,678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 행진을 이어가면서 아카데미 수상이 빛을 보지 못 한 것이다. ‘사울의 아들’은 국내 영화인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오른 배우 이병헌이 시상을 해 화제에 올랐으나 ‘귀향’의 흥행몰이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룸’은 주연배우 라슨의 인지도가 워낙 낮은 점이 악재로 작용했다. ‘룸’의 관계자는 “‘룸’은 지난해 토론토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아 국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며 “(다섯 번째 도전 끝에 생애 첫 오스카를 수상한) 디캐프리오에게 워낙 시상식 초점이 맞춰진 점도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국내에선 미미한 오스카 효과
※영화진흥위원회 집계(6일 기준, ‘룸’은 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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