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29일 서울 양재동의 한 교회에서 결혼한 김모(34)씨는 2월 초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축의금 명부를 살펴보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친한 동료의 이름이 방명록에는 있었지만 축의금 목록에는 없었던 것. 의아했던 김씨는 동료에게 “혹시 축의금을 냈느냐”고 물었고 “결혼식에 오지 않은 다른 사람의 축의금까지 합쳐 ‘가족’에게 건넸다”는 답변을 들었다. 김씨는 “축의금을 누군가 빼돌린 것 같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수사는 쉽지 않았다. 예식장이 교회였던 탓에 폐쇄회로(CC)TV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그대로 묻히려던 찰나 결혼사진을 확인하던 김씨는 결혼식 촬영 기사가 찍어둔 축의금 접수대 사진에서 낯선 중년 남성의 모습을 발견했다. 몇몇 사진에서는 이 남성이 하객에게 봉투를 건네주는 장면도 담겼지만 김씨 가족이나 지인 누구도 그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경찰은 중년 남성 김모(59)씨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26일 서초구의 한 지하철역에서 그를 붙잡았다. 조사결과 김씨는 결혼식 시작 직전 축의금 접수대가 붐비는 틈을 타 가족 행세를 하며 봉투 13개, 105만원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 축의금 절도범으로 전과 14범인 김씨는 이전에도 같은 수법으로 축의금을 훔치다 구속돼 2013년 초 출소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구로구의 또 다른 결혼식장에서도 축의금 70여 만원을 훔쳐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신랑의 가족을 행세해 축의금을 빼돌린 혐의(상습절도)로 김씨를 구속했다고 7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축의금의 경우 명단과 실제 액수가 맞지 않아도 하객에게 묻기 꺼리는 점을 노린 범행”이라고 말했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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