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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르고 숨기는 조국 일본, 필름에 담아 들이댄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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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르고 숨기는 조국 일본, 필름에 담아 들이댄 양심

입력
2016.03.0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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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없는 눈의 눈물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1932~2013)는 자신이 받은 피해에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타자에게 저지른 폭력은 쉽게 망각하는 일본인에게 ‘책임’의 문제를 정면으로 들이대었다. ‘일본의 밤과 안개 1960’에서는 전후 안보투쟁에 이르기까지 일본공산당과 학생운동의 책임을 질타했고, ‘버려진 황군, 1963’에서는 타자를 거부하는 무책임하고 자폐적인 일본사회를 비판했다. 오시마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국가가 숨긴 전쟁의 고름과 오물을 눈앞에 꺼내서 보여준다. 일본 병사로 징집되어 전쟁에서 부상당했음에도 일본 정부에게 버려진 재일 조선인 상이군인들은 일본 정부에 연금을 요구한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 정부 도쿄 대표부에 도움을 구하지만 일본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거부당한다. 낙심한 그들의 술자리 모임에서 한 맹인이 검은 안경을 벗는다. 눈알이 없는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오시마는 ‘눈알없는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고, 일본인에게 그 맹인의 눈으로 자신과 사회를 바라보라고 권고했다.

사회조직의 정상적인 틀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훼손된 신체를 갖고 있다. 전쟁으로 신체의 일부를 잃은 상이군인은 전쟁이 끝나면 잠시 나라를 위해 싸운 영웅으로 칭송되다가 이내 그 사회에서 천대받는 낙오자로 떨어진다. 주체성을 구성하는 통일된 신체는 생명유지의 결과물린 오물과 체액, 고름 등을 더러운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근대적 주체는 그것들을 눈에 안 보이는 장소에 버린다. 마찬가지로 국가는 전쟁의 결과물인 이러한 오물과 쓰레기를 눈에 안 보이는 곳에 폐기하고 그것의 존재를 부인한다. 그들에게 상이군인과 위안부는 잊혀져야 할 기억이자 폐기되어야 할 오물이다.

청일전쟁에서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일으킨 모든 전쟁에는 우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태평양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황국의 군인으로 전장에 동원되었던 조선인이다. 오시마는 일본인들이 보지 못했거나, 숨기려 했던 이들을 눈앞에 불러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눈알 없는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게 만든다. 전후 일본사회에 대해 책임을 묻고 고민하던 그는 ‘윤복이의 일기 1965’에서는 비판적 관찰자의 객관적인 위치로부터 몸을 옮겨 적극적인 연대의 행위를 보여준다. 오시마는 ‘청춘의 비석1964’을 만들기 위해 취재차 방한했던 당시에 가난한 소년들의 사진을 찍었다. 그는 이후 스틸 필름을 토대로 ‘윤복이의 일기’를 만들었다. 이 영화에서는 가난한 한국 소년들의 스틸 사진과 감독이 직접 읽는 대사가 교차된다. 오시마는 가난하고 소외된 껌팔이, 구두닦이, 신문팔이 소년에게서 “죽어 새잎을 틔우는” 희망을 본다. 이윤복으로 대표되는 한국 소년의 이름을 부르면서 감독은 상대와 자신을 일치시켜나간다. 오시마는 왜 “10살짜리 한국 소년 이윤복”을 그토록 애타게 불렀을까. 오시마가 한국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위안부나 재일조선인 문제를 소재로 여러 영화 ‘일본춘가고 1967’‘ 교사형 1968’을 만든 이유는 일본이 원죄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상대와 화해하거나 함께 살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시마는 “나는 이런 현실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강력한 자기반성 위에서 희생자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책임을 넘어 연대와 하나되기를 위한 “말걸기“로 이어졌다.

영화감독의 눈물

교토에서 태어난 오시마 나기사는 쿄토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대학에서 연극활동과 학생운동을 했던 그는 졸업 후 ‘쇼치쿠’영화사에 조감독으로 취직한다. 그는 ‘청춘잔혹이야기 1960’ ‘태양의 묘지 1960’를 통해 당대 젊은이와 사회 하층민의 반항과 울부짖음, 파괴적 행위와 범죄를 보여주었다. ‘일본의 밤과 안개 1960’에서는 안보투쟁을 둘러싼 일본 정치운동권의 실패와 모순을 폭로했다. 이 작품은 3일 만에 종영되었고 그를 계기로 그는 ‘쇼치쿠’를 뛰쳐나왔다. 예산을 지원받지 못했던 그는 적은 비용으로 제작 가능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을 소재로 한 3부작(버려진 황군, 청춘의 비석, 윤복이의 일기)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는 소재의 장벽과 형식의 한계에 도전하는 영화전선의 전위였다. 오시마는 저렴한 예산으로 내용의 밀도를 높이는 새로운 영화형식을 개발했다. ‘감각의 제국 1976’에서는 성이라는 소재를 과감하게 돌파함으로써 포르노 장르를 뛰어넘는 예술영화의 성과를 거두었다.

오시마는 1960년대 일본의 부정정신을 대표했다. 그는 ‘교사형 1968’에서 국가 권력과 사회구조가 어떻게 해방의 상상력을 죽이는가를 그렸다. 오시마는 주제의 심각함과 책임에 대한 중압감을 공격적 비판정신과 결합했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상식의 눈으로 감당하기 버겁다. 그의 영화는 모든 신경과 감각을 집중하도록 강요한다. 격렬한 진행 속도와 모든 힘을 다해 심연을 향해 돌진하는 열정은 오시마 영화의 매력이다. 타협 없는 탐구의 부정정신은 전후 젊은 세대의 불안에서 출발해, 재일한국인의 절망과 심연의 성을 거쳐, 적군이었던 영국군과 대면하고, 침팬지와의 사랑으로까지 관계를 만들고 확장해 나갔다. 시대현실과 대면하는 감독의 눈은 항상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근대의 열등감과 책임

일본은 미국에 의해 강제로 개항된 이후 철저하게 서양을 모방하며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으려 발버둥쳤다. 일본이 모방해야 할 서양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꿈의 세계”였다. 일본의 서양 바라보기는 한국보다 훨씬 철저했고 근본적이었다. 서양에 대한 동경과 열등감이 뒤집히면 근거 없는 자존감과 정체성 과잉으로 나타난다. 전쟁이 끝난 후 ‘천황숭배’가 되살아나고 ‘무사도’라는 일본적 정체성의 극단이 일본적인 미로 포장됐다. 잔혹함과 명예심의 이종교배는 일본 군인정신의 핵심이었다. 일본의 근대화는 서양에 대한 열등감과 전도된 우월감의 분열증세를 보였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서 고스란히 보존된다. 한국에게 일본은 동경의 나라였고 근대의 모범이었다. 반일을 주장하고 왜색을 때려잡던 자들에게 일본은 본받고 따라야 할 모범적인 선진국이었다. 전후에 살아남은 일본 전범들이 정치인으로 변신하면서 자연스레 친미노선을 걸었듯이 한국도 해방자로 진입한 미국을 신처럼 모셨다.

오시마는 ‘의식 1971’에서 일본사회의 강고한 지배구조를 분석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쿠라다 가문은 패전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았던 지배계급 그 자체였다. 일본의 지배계급은 전후 미군정을 넘기면서 고스란히 권력의 핵심으로 복귀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친일파도 해방에 의해 무너지지 않고 부활했다. 그들의 자식들은 2010년대에 서로 만나 과거의 책임을 파묻고 신우익과 신교과서를 만들었다.

우리에게 아직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 하고 극복되어야 할 부정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부르지 않아도 이미 우리 속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와 있다. 해방된 지 70년이 넘었으나 그들이 뿌린 씨앗은 여기저기서 독버섯처럼 피어나고 있다. 식민지 근대에 대한 자발적 찬가도 심심찮게 울려 퍼진다. 그러나 식민지근대는 일본제국주의의 근대적 부산물이지 우리의 근대가 아니다. 곳곳에서 일본의 ‘쇼와 모던’을 식민지의 모던으로 착각하고 제국주의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어리석은 일들이 벌어진다. 해방 후 무수히 반복된 거짓 극일과 친일의 쳇바퀴를 돌면서 우리는 아직도 일본이 무엇인지 모른다.

50년 전 젊은 오시마 나기사는 한국에 말을 걸었다. 당시에 아무도 오시마의 ‘말걸기’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지 않았다. “한국인과 소년만이 진실로 고뇌할 수 있다”는 오시마의 메시지는 베트남 참전 이후의 한국에게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이미 성인이 된 한국인은 일본인과 더불어 진실로 고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3년 세상을 떠난 오시마를 생각하며 우리는 그의 말걸기에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응답할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백욱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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