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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고교체제 개편이 필요한 때다

입력
2016.03.06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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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직권상정으로 필리버스터가 한창일 때였다. 통계청이 소득과 자산에 관한 통계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으로는 점점 더 저소득층에서 중산층 또는 고소득층으로 올라서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달 26일 교육부와 통계청이 함께 내놓은 ‘2015년 초ㆍ중ㆍ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서울과 인천, 경기의 사교육비가 3년째 증가 추세이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사교육비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부모의 능력에 따라 사교육비 격차가 많게는 7배에 달하였다. 고소득 가정의 자녀일수록 사교육을 받는 비중이 높은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눈여겨볼 대목은 중학교의 사교육비가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는 점이다. 이들 두고 언론에서는 “특목고 가야 명문대 간다”는 인식 때문이라는 분석 기사를 쏟아낸 바 있다. 특목고나 자사고 등 소위 ‘귀족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중학교 단계에서 사교육비 지출을 늘린 결과라는 점에서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부유층의 경우 ‘명품유치원’이나 사립초등학교 때부터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난 20여 년간 특별히 고등학교의 계층 대응적인 서열화가 도를 넘어선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열의 꼭대기에 외고와 자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일반고의 경우도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의 학교가 확연히 갈린다. 부잣집 아이들이 서열의 꼭대기에 위치한 학교와 세칭 명문대학을 독차지한다. 나머지 아이들은 조용히 그리고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이런 현실 앞에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깊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누가 뭐래도 정부의 책임이 큰데, 그간 교육부는 이런 문제 상황을 시정하기는커녕 시나브로 격화시켜왔다. 일찍이 복고적 엘리트주의에 굴복해 외고 등 ‘귀족학교’ 도입의 물꼬를 튼 당사자가 바로 교육부다. ‘학교 다양화’나 ‘학교 선택권’이란 시장만능론의 주술에 사로잡혀 자사고 정책을 밀어붙인 것도 교육부다. 학교가 ‘위대한 평등화 장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순간 감당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외면한 근시안이 사회적 화를 불러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연구 용역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장기적으로 외고와 자사고, 국제고 등을 폐지하고 일반고 중심의 고교체제로 개편해야 한다는 처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특목고, 자사고, 일반고 순의 수직적 서열체계가 강고하게 구축되어 학교 유형에 따라 학업성취도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는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고입 전형에서 전기고인 특목고와 자사고가 우수학생을 독점한 결과라는 것이다.

“학교 선택권 유보”를 본질로 하는 고교 평준화 제도가 사실상 붕괴했다는 진단으로 ‘3단계 배정’이라는 단기적인 대안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1단계에서 특성화고ㆍ마이스터고, 2단계에서 특목고ㆍ자사고ㆍ일반고가 동시에 선발하고, 3단계에서 부족한 인원을 충원하는 식이다. 외고와 자사고 등의 선발효과를 완화 내지 해소시키는 한편, 선발경쟁에서 벗어나 우리 아이들 모두에게 더 많은 교육적 배려를 해야 한다는 고민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교육부가 딴청을 피우고 있는 사이 서울시교육청이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는 형국이다. 국가 의제로서 법령 개정 등의 험로가 예상되지만 인내심을 갖고 차근히 풀어나가길 기대해본다. 평준화가 세계 보편적인 제도로 자리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회 불평등과 청년들의 좌절이 우심한 현실에서 학교가 교육 불평등을 매개로 상황을 악화시켜서야 되겠는가. 고교 평준화는 현 대통령이 '추억'하는 아버지가 대통령 재임 시절 도입한 제도다. 당시 국민들로부터 환영 받은 몇 안 되는 제도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곱씹어볼 일이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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