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발에 밟히거나 자전거에 치여
지자체가 생태통로 설치해 이동 도와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과 개포동을 가로지르는 양재천 남쪽 기슭 자전거도로. 한적한 도로 한 편에서 ‘두두두두’ 굴착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길이 30m, 깊이 50㎝ 가량의 통로를 내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남쪽 야산에 사는 두꺼비들이 천변 무논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생태통로’ 입구로 유도하는 길을 내는 중이었다.
20년 전 양재천 복원 당시 함께 조성된 길이 100m, 폭 20m 규모의 무논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벼농사학습장’으로 쓰이다 겨울철엔 썰매장으로 활용됐다. 그러나 이곳은 야생생물 서식에 필수적인 습지이기도 하다. 특히 야산에 사는 두꺼비에게는 최적의 산란지. 이들은 3월 초쯤 산에서 내려와 천변 습지에 알을 낳고 다시 서식처로 돌아간다. 하지만 자전거도로(1997년)와 산책로(2001년)가 생기면서 습지와 야산이 단절됐고, 서식처로 돌아가던 두꺼비들이 시민들에게 밟히거나 자전거에 치여 죽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5일)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청이 양서류 생태통로 추가 조성공사를 서둘러 마무리한 것은 두꺼비 산란기가 임박해서다. 이번 주말 비가 내리고 나면 다음 주 초부터 알을 낳기 위해 하산하는 두꺼비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논에 가려면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건너야 하고 많은 두꺼비들이 밟히거나 자전거에 치일 것이다.
이른바 ‘두꺼비 로드킬’은 두 달쯤 뒤에도 반복된다. 해마다 알에서 부화하는 두꺼비는 3,000~4,000마리 정도인데 논에서 자란 새끼 두꺼비는 4월 말, 5월 초 논을 나와 주로 밤에 산으로 올라간다. 이때도 도로를 지나야 한다. 윤덕수 ‘양재천사랑환경지킴이’ 회장은 “한꺼번에 이동하다가 무리하게 도로 위로 올라와 자전거에 치이거나 행인에게 밟혀 죽는 새끼 두꺼비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지금도 생태통로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3년 구청이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밑으로 폭 34㎝, 길이 4m 규모의 생태통로 21곳을 설치했다. 그러나 중앙대 ‘그린리버 연구단’이 카메라를 설치해 지난 1년 간 관찰한 결과, 통로의 입구가 좁고 입구의 경사가 가팔라 유도로를 따라 이동하던 두꺼비들이 입구를 지나쳐 버리거나 기어 올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드러났다.
4일 마무리된 공사에서는 이런 미비점들이 보완됐다. 통로 입구의 폭을 70㎝로 두 배 넘게 넓혔고 턱도 없앴다. 유도로의 오르막 경사도 45도에서 30도로 낮췄다. 두꺼비는 암컷이 수컷을 업고 이동하기 때문에 45도 경사는 버겁다. 위치도 두꺼비들의 이동이 가장 빈번한 영동4교 교각 인근으로 정했다. 태어나자마자 사지(死地)로 향하는 이들의 운명을 구청이 바꿔보겠다는 것.
그린리버 연구단 김진홍 교수(건설환경플랜트공학과)는 “자전거 도로가 하천 둔치에 과다하게 설치되면 두꺼비 이동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는 만큼 길 밑에 생태통로를 만들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번 보강 공사로 두꺼비들의 로드킬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광양시도 4월부터 7개월 동안 4억5,000만원(환경부 기금)을 들여 두꺼비 서식지를 복원하고 생태통로와 관찰로를 설치할 계획이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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