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조선사의 선박 수주량이 단 2척에 그쳤다. 앞서 1월 수주량은 1척에 불과했다. 올들어 두 달간 우리 조선업체들이 확보한 일감은 3척뿐이란 얘기다. 건조 예정인 선박 수주 잔량도 11년여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는 등 ‘수주 가뭄’이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8조원의 적자를 기록한 국내 조선업체의 위기가 더욱 심각해지면서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4일 영국의 조선ㆍ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달 전 세계의 선박 발주량은 57만CGT(표준화물 환산톤수ㆍ16척)였다. 이 가운데 일본이 5척, 한국이 2척, 중국이 1척을 각각 수주했다. 1월 수주량을 합쳐도 중국이 11척, 일본이 6척인데 반해 한국은 3척에 불과했다. 3척은 현대중공업이 수주한 유조선 2척과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1척이 전부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2개월째 수주실적이 ‘0’인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국내 조선업체의 수주량이 42척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년 만에 실적이 무려 14분의 1로 추락한 셈이다.
우리 조선업체의 수주량이 두 달 연속 5척 미만에 그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3~6월 이후 처음이다. 이처럼 수주실적이 악화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 선박 발주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물동량이 크게 감소한 데다가 유가 하락이 장기화하면서 유조선과 해양플랜트 발주도 급감했다. 국제해사기구는 올해부터 새로 건조되는 선박에 대해 배출가스 기준을 강화했는데, 선박 건조 비용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 선주들이 지난해 선발주를 한 것도 한 요인이다.
올해 1~2월 세계 전체의 선박 발주량(33척ㆍ104만CGT)은 지난해 같은 기간 국내 조선업체 수주량(42척ㆍ164만CGT)보다도 적다.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80%(CGT 기준)가량 급감했고, 이마저도 중국, 일본과 나눠먹다 보니 일감이 마르게 됐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국내 업체가 확보한 선박 수주 잔량도 710척(2,844만CGT)으로 줄었다. 2008년 한때 2,419척(7,139만CGT)에 달했던 한국의 수주 잔량이 2,900만CGT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4년 8월 이후 11년 6개월 만이다.
지난해 해양플랜트 등에서 막대한 손실을 기록한 조선업체들은 무리한 저가수주 경쟁을 벌이는 대신 수익성을 꼼꼼히 따져 계약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꿨지만, ‘수주 가뭄’이 장기화할 경우 3~4년 뒤 일감이 없어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보통 안정적인 수주잔량은 3년치 정도로 잡는데, 현재 남은 일감은 1년6개월 분에 불과하다”며 “부족한 일감이 1년치에 달하기 때문에 향후 얼마나 수주량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 마음대로 선박 발주를 늘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현재로선 막막한 상황”이라며 “다만 최근 경제 제재가 풀린 이란의 선박 발주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요가 하반기부터는 조금씩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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