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에 최면술ㆍ포르노가 판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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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에 최면술ㆍ포르노가 판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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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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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립위원회의 보고서와 벤저민 프랭클린이 휘두르는 지팡이에 메스머주의자들이 달아난다. 알마 제공

혁명전야의 최면술사

로버트 단턴 지음ㆍ김지혜 옮김

알마 발행ㆍ388쪽ㆍ2만2,000원

포르노그래피의 발명

린 헌트 엮음ㆍ전소영 옮김

알마 발행ㆍ480쪽ㆍ2만5,000원

세상을 단번에 뒤엎은 ‘프랑스혁명’은 피 뜨거운 이들에게 영원한 로망이다. 계몽주의, 이성, 발전, 밝은 미래, 진보 같은 단어들은 가만 듣고만 있어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현실이 불만족스러울수록 혁명의 매력과 아름다움은 올라간다. 몇해 전 프랑스혁명사를 다룬 ‘레미제라블’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까지 우리나라에서 큰 화제를 모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프랑스혁명의 진실을 다른 각도에서 파고든 책 2권 ‘혁명전야의 최면술사’ ‘포르노그래피의 발명’이 동시에 나왔다. 다른 각도라 함은 우리가 이제껏 프랑스혁명에 대해 교과서에서 배웠던 계몽주의나 이성의 힘 따윈 잠깐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미다. 대신 약간은 몽롱한 신비주의와 저질 뒷담화를 꺼내 들어야 한다. 이 책들은 시대 상황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미시사적 방법을 쓰기 때문이다.

‘혁명전야의 최면술사’는 ‘고양이 대학살’(문학과지성사), ‘책과 혁명’(알마)으로 친숙한 로버트 단턴의 책이다. 알려진 대로 단턴은 프랑스혁명에서 계몽사상이 차지하는 지위를 약간 끌어내린다. 혁명의 바리케이트를 쌓아 올린 이들이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감화를 받은, 합리적 이성의 빛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주장을 내놔 세상을 놀래켰던 학자다.

메스머주의 집회를 풍자한 그림. 관과 줄을 통해 유체를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환자를 치료한다. 알마 제공

‘혁명 전야의 최면술사’도 이 맥락 위에 서 있는 책이다. 단턴이 주목하는 이는 프랑스혁명(1789년) 이전 1778년 2월 파리에 도착한 독일 의학자 안톤 메스머다. 전 우주에 가득 차 있으나 “포착하기 어려운 어떤 유체를 발견”했고 이 유체로 “우주 전체를 목욕시키는 한편, 유체를 지구로 끌어내려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몸 속 유체 흐름을 마사지 등의 방법으로 잘 흐르게 도와주면 온 몸이 조화를 되찾아 건강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동물마다 자기 몸에 어떤 자기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동물자기이론’, 혹은 메스머의 이름을 따 ‘메스머주의’라고도 부른다. 실제 통 같은 것을 만들어놓고 그 속에 몸이 불편한 이들을 넣은 뒤 메스머유체치료법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정도만 들어도 딱 감이 온다. 어수룩한 사람들 한데 모아놓고 약 팔기 위해 사기치는 얘기와 비슷하구나.

단턴이 주목하는 바는, 그럼에도 파리 시민들이, 그리고 나중에 프랑스혁명의 지도부를 구성하는 라파예트, 브리소, 베르가스, 카라 같은 쟁쟁한 인물들이 이 메스머주의에 빠져들었다는 점이다. 아니 도대체 왜?

당대의 과학적 열기가 이유다. 중력, 전기, 열기구 등 과학 발달이 급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던 상황에서 “대중들은 미스터리, 스캔들, 메스머주의 같은 것에 열광”했다. ‘유체’라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과학 발달에 따라 점차 발견될 그 무엇인가가 우리를 앞으로 더 행복하게 해주리라는 믿음을 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실제 당대 프랑스에서는 세느강을 걸어서 건너갈 수 있는 신발을 발명했다는 기사가 언론에 실리기도 하는 등 온통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열망이 넘쳐흘렀다.

거기다 정부가 메스머주의를 탄압해주기까지 했다. 아니 사실, 탄압 당할 만도 했다. 아무 근거 없는 얘기들이었는 데다, 메스머유체치료를 한답시고 귀족 여부인을 통에다 집어넣고 이리저리 주물러대기 일쑤였으니. 그런데 정부의 탄압은 메스머주의를 순교자로 만들어버렸다. 메스머주의가 좋아서라기보다, 정부가 싫어서다.

더구나 사회불만세력은 메스머주의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타락한 귀족들은 유체의 균형을 잃었고 농민들은 건강한 자연의 유체를 고스란히 간직한 존재들이라 얘기했다. 그 때문에 이 세상의 유체가 건강하지 못하다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처음엔 마른 침을 삼키고 입술을 들썩대다 차마 말하지 못하겠지만, 몇 번 이런 주장과 선동들이 나돌다 보면 결국 모두의 입에서 ‘혁명’이란 단어가 나올 수밖에 없다.

단턴은 계몽주의의 위상을 끌어내리되 완전히 내버리지는 않는다. 이 우주를 가득 채운 유체의 흐름에 대해 얘기하는 메스머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놀랍게도 루소의 철학적 논의와 닮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루소의 추상적 논문(사회계약론)은 그의 다른 작품과 달리 일반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메스머주의자들은 메스머주의를 통해 루소의 정치이론을 전파한 셈이다.

18세기 외설물의 대명사인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문지기 동 부르그 이야기'에 들어간 삽화. 알마 제공

‘포르노그래피의 발명’도 같은 맥락 위에 서 있는 책이다. 제목만 보고 군침 흘려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포르노그래피가 민주주의에 기여한 부분을 파고드는 책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싶지만, 생각해보면 외설적 이야기들이야말로 진위와 무관하게 권력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다. ‘장자연 사건’의 파장을 떠올려보면 된다.

가령 린 헌트가 쓴 9장 ‘포르노그래피와 프랑스대혁명’은 프랑스대혁명을 전후해 프랑스 전역을 휩쓸었던 각종 음란물들에 대한 추적기를 담고 있다. 혁명이란 게 참, 시덥잖구나 싶을 수도 있다. 거꾸로 비정상적인 권력일수록 루머 단속에 왜 그리 열을 올리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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