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화요일’ 선전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공화당 후보 지명 가능성이 80%에 육박하면서 동아시아의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비상에 걸렸다. 트럼프 진영과 특별한 외교 핫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은 껌 값 수준의 돈만 내고 미국에 안보를 의지한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부담시켜야 한다’는 발언이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2일 워싱턴 외교가에 따르면 트럼프의 급부상 이후 두 나라 외교당국이 트럼프 진영의 외교ㆍ안보 자문그룹과의 접촉을 모색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트럼프 캠프가 워낙 배타적이어서 외국 인사와의 접촉 자체를 기피하고 있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번듯한 외교ㆍ안보 자문그룹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한 관계자는 “내부 경선 승리에 주력하다 보니, 당장 미국 유권자 민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대외부문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지난해 9월 선거 캠프에 외교ㆍ안보팀을 만들겠다고 약속하고는 아직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의 또 다른 관계자는 “민주당 후보로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캠프에는 이미 정부 수준의 참모진이 구축된 상태이며, 한국이나 일본의 주미 대사관 모두 접촉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두 나라 모두 공화당 후보 중에서는 방한ㆍ방일 도중 각각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예방하는 등 동북아 문제에 관심 많은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에 신경을 쓴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도 트럼프의 급부상으로 주요 국가 중 가장 속이 타는 3개국 가운데 두 나라를 한국과 일본으로 꼽았다. 다른 한 나라는 거대장벽 건설 공약의 남쪽인 멕시코다. 이 신문은 ‘친구들에게는 적, 적들에게는 친구’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트럼프가 유세 도중 내놓은 외교안보 정책을 비난하며, 미국의 전통 우방인 한일 양국의 피해를 우려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껌 값 수준의 방위비 분담금’을 이유로 한국과 일본에 대해 싸움을 걸 수 있다고 예상했다. 또 두 나라가 인건비를 뺀 미군 주둔 비용의 절반에 해당하는 경비를 부담하는 사실은 물론이고, 미군이 없는 두 나라가 중국ㆍ북한에 맞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게 미국에 더 큰 부담을 줄 것이라는 점은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포스트는 “동맹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대신 러시아 철권통치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친하게 지내겠다는 트럼프의 대외정책이 이행될 경우 지구촌은 커다란 혼란에 빠지게 될 “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멕시코 장벽건설 ▦푸틴에 대한 존경 등 비상식적 발언은 경선 과정에서 인기를 위한 것일 뿐 트럼프가 본선에 나서거나 실제로 집권한다면 미국 역대 행정부의 전통적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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