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권 운동이 활발해질 무렵 1960년 2월 1일 흑인 네 명이 North Carolina주의 Greensboro시에 있는 WOOLWORTH'S store에 들어갔다. 이들이 커피를 주문했지만 거절당한 이유는 백인만 출입하는 식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들은 협박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앉아서 버텼고, 이 전략이 소위 sit-in 시위의 시초가 되었다. 둥글게 원을 그리고 앉아 있다가 경찰이 와서 한 명씩 끌어내면 그 빈자리를 다른 동조자가 채우는 방식으로 발전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 뒤에 남부 지역에서 흔했던 흑백 차별이 하나씩 사라진 계기가 되었다. 이 시위로 인해 첫해만 해도 1500명의 학생들이 체포되었지만 '말없이 앉아 자리를 지키는' 비폭력 항의 방식은 점차 인기를 더해 집회의 방식이 되었다.
당시 이를 보도한 언론에서는 'sit-in'이라는 데모 형태를 언급하며 신조어를 쓰기 시작했고 봇물처럼 번진 미국의 60년대 민권 운동은 흑인들의 농성에 백인이 동조하면서 유사한 표현이 등장했다. 백인 전용 수영장에 흑인이 들어가 항의하는 swim-in, wade-in(수영장에 들어가 걸어 다니며 하는 시위)가 있었고 일정한 장소에서 행진만 하는 march-in이 생기고 바닥에 누워 하는 lie-in 그리고 백인 전용 극장의 표를 달라며 서서 시위하는stand-in이 있는가 하면 화랑 전시회에 출입시키라며 무조건 밀고 들어가는 walk-in 그리고 출입을 금하는 학교 안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항의하는 study-in이 생기고 공원에서 놀면 항의하는 play-in과 교회에서 무릎 꿇고 시위하는 kneel-in 그리고 백인 화장실(rest room)에 흑인이 들어가 항의하는 rest-in도 나왔다. 월남전 때에는 반전(反戰)데모의 형태로 교수와 학생들이 수업 형태로 항의를 했는데, 이 또한 teach-in, read-in라고 불렸다. 오늘날 자동차를 몰고 차 안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자동차 전용 극장(drive-in)도 알고 보면 위와 같은 배경을 갖고 있다. 자동차를 몰고 볼일을 보는 drive-in bank, drive-through restaurant 등도 알고 보면 위의 예에서 파생된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이러한 표현은 확연히 자리 매김을 하였고 관련 어구도 무척 많아졌다. 모든 건물이 금연을 선포하자 이제는 '우리도 흡연할 권리'가 있다며 smoke-in같은 시위도 생겼고 자기 그림도 전시해달라는 화가들의 hang-in이 있는가 하면 연인들의 사랑대회를 love-in이라고 하고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출연을 'be-in'라고 부른다. 농성하며 죽을 때까지 해산하지 않는 'kill-in' 형태도 있다고 한다. 신문 잡지에서 자주 접하는 'the-in'이라는 말은 아픈 역사로 태어난 파생적 표현들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한국만의 독특한 시위 형태인 '1인 시위'(one-man protest)가 있다. 혼자서 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는 것은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인데 나중에는 여러 사람이 릴레이 식으로 1인 시위를 이어가는 것(one-man rally)으로 발전하였다. 비폭력 시위가 표현의 방식인 만큼 이로 인한 파생 어구도 그만큼 많아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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