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예비 경선 패배를 안겼던 흑인 유권자들이 8년 뒤에는 든든한 원군으로 변신했다. 뉴햄프셔 주의 충격적 패배로 위기에 몰렸던 클린턴 전 장관을 흑인 표심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경선에서 살려낸 데 이어, ‘슈퍼 화요일’에서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클린턴 전 장관이 버니 샌더스 의원에게 압승을 거둔 지역은 공통적으로 흑인 유권자 비율이 높았다. 흑인 비율이 30%가 넘는 앨라배마(57%), 조지아(50%), 테네시(32%) 주에서는 큰 격차가 벌어진 반면, 전체 유권자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버몬트와 14%에 불과한 오클라호마 주에서는 샌더스 후보가 승리했다.
실제로 흑인 유권자들은 클린턴 전 장관에게 몰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됐다. 진보 성향의 백인 계층에서는 대등 혹은 백중 열세 형국이었으나, 흑인들이 최고 90%를 넘어서는 몰표를 던진 덕분에 압승을 거둔 것이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앨라배마 주의 경우 투표장에 나온 흑인 유권자의 92%가 클린턴 전 장관을 선택한 반면, 샌더스 의원은 6%에 불과했다. 이런 경향은 아칸소(90%), 테네시(85%), 조지아(83%) 등 미국 남부 벨트 전역에서 동일하게 확인됐다.
흑인 몰표의 원인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우선 클린턴 진영의 ‘오바마 계승’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버락 오바마 1기 행정부에 참여한 클린턴 전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초기 껄끄러운 관계를 정리하고, 대선 경쟁에 뛰어든 직후부터 철저하게 몸을 낮추는 전략을 폈다. TV토론 때마다 공개적으로 의료개혁부터 대외ㆍ안보분야까지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점을 수시로 밝혔다. 반면 버니 샌더스 후보는 개혁 필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현직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까지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흑인 표심과 멀어지게 됐다. 샌더스 지지계층이 주로 백인으로 구성되는 바람에 ‘클린턴은 흑인, 샌더스는 백인’이라는 인종 대결적 구도가 자연스레 형성된 것도 몰표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 밖에도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 의원이 갖는 태생적인 확장성 한계도 클린턴 전 장관이 구조적으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퍼스트 레이디’, 국무장관, 상원의원(뉴욕) 등 검증된 경력과 샌더스 진영 대비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을 내건 점이 40대 이상 중도 성향에 가까운 민주당 지지자들을 효과적으로 결집시켰다는 설명이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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