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클라스'가 다른 통 큰 기부자가 탄생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주커버그와 프리실라 챈 부부가 딸 맥스를 낳고 어린 딸과 다음 세대를 위해 페이스북 지분의 99% 기부를 약속한 것이다. 이를 현 시가로 따지면 무려 450억 달러(약 52조원)에 달한다. 이들은 유한책임회사(LLC) 형식으로 설립된 '챈 주커버그 이니셔티브'에 재산을 기부해 개인화된 맞춤형 학습, 질병 치료, 강한 공동체 만들기 사업 등에 초점을 맞출 것을 공표했다.
▲ 마크 주커버그(31)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오른쪽)와 프리실라 챈(30) 부부가 딸 맥스를 안고 있다. (EPA=연합뉴스)
주커버그의 기부가 세간의 관심을 모은 이유는 남다른 기부 액수도 있지만 자수성가로 모은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대신 사회에 돌려주기로 한데에 있다. 한국에선 재벌들이 경영권 보장 등을 위해 재산을 자녀에게 상속하는 경우가 많지만 해외에서는 반대로 재산환원 동참 운동과 같은 기부의 선순환 현상도 나타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맨손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아버지 세대의 말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지난 한해를 뜨겁게 달군 수저론에서 볼 수 있듯이 노력보다 태생이 중요한 세습자본주의는 이미 우리 사회에 상당히 깊은 뿌리를 내렸고, 물려받지 않으면 소유할 수 없다는 의식이 팽배하면서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는 사람보다 상속자들이 더 많은 부와 특권을 누리는 사회다. 이런 사회를 타파하기 위해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기부문화의 확산'이다.
■ 기부문화, 수저론 대안될까
경제분야의 전문가들은 수저론이 상징하는 격차를 기부문화를 통해 해소하기 위해서 기업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재벌이 크게 성장한 것은 국가정책적인 배려 때문"이라며 "대기업 총수부터 대물림보다는 사회 환원으로 착한 기부의 모범을 보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교수는 "낙후된 기부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기부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기업에는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부 풍토의 기반을 다지고, 정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기부문화의 확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소외계층을 위한 기부문화가 점점 번지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부액은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나눔의 경제학 - 영미와 비교한 한국 나눔문화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부금 신고액은 2006년 8조1,400억원에서 2010년 10조340억원 2013년 12조4,859억원 등으로 계속 증가했다. 그러나 GDP 대비 기부액의 비중은 2006년 0.84%, 2013년에는 0.87%를 기록하는 등 상대적으로 증가세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2.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 기부문화, 확대되지 못하는 이유
기부문화가 확대되지 못하는 이유로는 우리 사회의 빈약한 기부 문화의 배경에 자리한 제도적 맹점과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꼽힌다.
기부하는 사람들이 존경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기부를 장려하고 촉진할 수 있도록 세법 정비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세법에 의해 선의의 기부자에서 한순간에 고액체납자로 전락한 황필상(69)씨의 억울한 사연은 잘 알려져 있다. 2002년 개인재산을 털어 주식과 현금 등 215억원 상당을 모교인 아주대에 쾌척했지만 그로부터 6년 뒤인 2008년, 황씨는 세무서로부터 증여세로 무려 140억원을 부과받았다. 장학재단에 기부한 금액 대부분이 현금이 아닌 주식이라 과세의 대상이 된 것이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자산을 공익재단에 기부하더라도 보유 주식의 5% 이상을 출연할 경우엔 증여세를 내야 한다. 장학재단을 지주회사로 삼아 편법으로 부를 세습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지만, 황씨는 거액의 증여세를 내야할 처지가 됐다.
황씨의 사연이 주목받으면서 고액 기부자들의 기부 의지를 꺾는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부를 빙자해 탈세나 편법 증여·상속을 하려는 시도는 차단해야겠지만, 선량한 사람의 기부 의욕은 꺾지 말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지난해 11월 고액기부금 세액공제율이 25%에서 30%로 높아지는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긴 했지만 여전히 개인의 고액 기부를 이끌어 내기에는 미미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사회문화적 이유로는 고액기부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이 꼽힌다. 김성식 아름다운재단 특화나눔팀장은 "고액자산가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이 그들이 내는 기부액으로까지 확대되는 경우가 있어 재단에 기부를 하는 고액기부자들이 공개에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며 "기부의 선순환이 이어져야 하는데 잘 되지 않다보니 기부를 하면서도 숨기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서연 기자 brainysy@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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