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의 학명은 Nyctereutes procyonoides로 ‘밤에 돌아다니는 작은 개’라는 뜻이다. 너구리는 라쿤과는 매우 유사하게 생겨 헷갈리지만 너구리의 영명은 Raccoondog으로 개과이며, 라쿤은 북미너구리과로 전혀 관계가 없는 동물들이다.
너구리는 1속 1종으로만 남은 독특한 동물로, 너구리속은 약 900만년 전에 출연했지만 340만년전부터 멸종하기 시작해 지금은 너구리만 남았다. 해외에서는 사냥이나 모피교역과 도시화, 유기동물들과 질병의 문제로 그 수가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개체수는 줄어들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너구리의 수렵을 허용하고 있지 않는 우리나라에서의 주된 위협요인은 질병과 도로교통사고로 보인다.
모피 생산 증대를 위해 구소련을 통해 동유럽으로 이주된 너구리는 그 폭발적인 적응력과 식성, 번식능력과 동면능력 때문에 급격하게 퍼져나갔다. 광견병과 같은 질병의 주요 숙주로서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며, 여우와 같은 토종 포유동물과의 경쟁도 지속되고 있다.
1928~1958년 모피생산과 개량을 위해 구소련의 76개 지역에 약 1만여 마리의 너구리가 도입됐다. 알타이지역 등에서는 혹독한 추위와 먹잇감 부족으로 생존이 어려웠지만 러시아 연방국가와 중앙러시아 지역, 우크라이나에서는 너구리가 정착했다. 1948년 35마리의 너구리가 도입된 라트리아에서는 1960년 공식적으로 4,210마리의 너구리가 잡히기도 했다.
이제 너구리는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에 매우 흔한 동물이 되었고 세르비아, 프랑스, 루마니아, 이탈리아,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독일, 노르웨이, 덴마크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너구리에게도 위협이 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연구자료는 부족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로드킬에 의해 희생되는 중형포유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연간 11만~37만마리가 도로에서 죽음을 맞는다고 보고된 바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도 너구리 개체군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요인임은 분명한 것 같다.
너구리를 인간이 활용하고 있는 가장 잘 알려진 방식은 바로 모피다. 동유럽에서 서유럽으로 너구리가 퍼져나가고 있는 이유도 모피생산량 증대를 위해 구소련이 동아시아 동물인 너구리를 강제로 동유럽으로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피는 현대 사회에서 동물권과 관련된 이슈와 맞물려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부터 겨울철 최고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라쿤털은 여기저기 많은 사람들의 모자로 가득 달려 있다. 많은 동물보호단체에서도 라쿤털의 문제를 지적하였고, EBS 하나뿐인 지구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다룬 바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라쿤털이 아닌 너구리털이 분명하다. 특히 길고 검은 겉의 털은 너구리의 특징이기도 하다.
너구리는 중국에서 매우 대량으로 사육하며 생산하고 있다. 특히 모피의 질을 좋게 한다는 의도로 채 죽지도 않은 너구리에게서 껍질을 벗기는 중국 농장의 동영상이 공개되어 있기도 하다. 말이 생산이지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아비규환이다. 영상을 끝까지 보기 힘든 이유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체 패션만을 쫓기에는 너무나 이기적이지 않을까.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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