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 거대한 성토장으로 변해
“제 역할 못하는 정부 대신
할머니께 명예와 인권 돌려드리자”
대구선 플래시몹, 대전은 반대 집회
소녀상 농성은 종료, 문화운동 전환
올해 97주년을 맞은 3·1절의 화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였다. 지난해 12월 한국과 일본 정부가 합의한 일본군 위안부 협상의 여진이 잦아들기는커녕 3·1절을 계기로 정부를 비판하고 합의 폐기를 촉구하는 분노의 함성이 전국 주요 기념 행사장에서 메아리 쳤다.
한일협상안폐기대학생대책위원회(대책위) 소속 대학생 400여명은 이날 63일간의 노숙농성에 마침표를 찍었다. 위안부 협상 타결 직후인 지난해 12월31일부터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추위와 싸우며 ‘평화의 소녀상’을 지켜 온 학생들이다. 이들은 개강을 맞아 불가피하게 공식 농성을 마무리할 수 밖에 없음을 설명하면서, 국민들이 이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줄 것을 촉구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상징하는 노란색 점퍼를 입고 나비모양 피켓을 손에 든 참가자들은 이날 오전 이화여대에 집결해 행사를 시작했다. ‘2016 대학생 3·1 독립선언문’낭독, 위안부 합의내용이 쓰인 플래카드를 찢는 퍼포먼스 등의 순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김연희(28) 대학생겨레하나 대표는 “공식 농성이 끝난다고 해서 위안부 합의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각자 소속된 대학으로 돌아가 소녀상 건립 운동, 학내 수요 집회 개최, 재단 모금 등 다채로운 문화 운동으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학생들은 “이 땅에 평화를, 할머니들께 명예와 인권을” 등의 구호를 외치며 청계광장까지 행진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도 이날 오후 중구 덕수궁 중명전 앞에서 ‘겨레의 합창-333인 2016 독립선언’ 행사를 개최했다.
청계광장은 오후 3시가 되자 지난해 말 이뤄진 정부의 졸속적인 위안부 합의를 규탄하는 거대한 성토장으로 변했다. 평화나비, 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 등 대학생 단체, 종교인 등 각계 각층의 시민 1,500여명(주최측 추산)은 “위안부 합의 무효”를 외쳤다. 청계광장을 찾은 정종성(36)씨는 “제 역할 못하는 정부와 대통령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심정으로 행사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여덟 살 아들을 데리고 행사에 참석한 한정아(39ㆍ여)씨는 “아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이 얼마나 힘드셨는지 알려주기 위해 광장으로 나왔다”며 “막상 행동하기 주저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자발적으로 할머니들을 위하는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전했다.
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으로 이동 해 ‘소녀상 지킴이 시상식’을 끝으로 공식적으로 농성을 마무리 했다. 시상식 이후 ‘노숙농성 시즌2’를 선포한 한연지(23·성신여대 4학년)씨는 “대책위 차원의 노숙농성은 끝났지만, 개인적으로 이달에도 농성을 이어 나가겠다. 농성을 하기 위해 휴학계도 냈다”며 의지를 다졌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도 위안부 합의를 비판하는 릴레이 행사가 이어졌다. 대전시청 북문 보라매공원 평화의 상 앞에서는 ‘위안부 한일합의 원천무효 아흔일곱 번째 3·1 만세운동 집회’가 진행됐고, 충남 당진 터미널광장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다.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는 대구지역 28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한ㆍ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 대구행동’이 모여 플래시몹을 펼쳤다.
위안부 행사에 관심이 밀리긴 했지만 3ㆍ1절 단골 이벤트인 만세 운동도 전국 각지에서 재현됐다. 종로구 남인사마당에서는 민족대표 33인으로 분장한 시민들과 3ㆍ1운동 당시 의상을 차려 입은 청소년 500여명이 대형태극기를 들고 보신각까지 행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박래학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독립유공자 고 이명 선생의 자녀 석희씨 등 12명은 보신각에서 4명씩 3개조로 나눠 각각 11번씩 모두 33번의 종을 쳤다.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선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을 기념해 1,919명의 명예독립운동가들이 만세 운동을 재현하며 순국선열의 넋을 기렸고, 경기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에서는 중·고교생 71명으로 구성된 ‘청소년 독도수호대’ 발대식이 열렸다.
박주희기자 jxp938@hankookilbo.com
신혜정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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