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핵 협상 타결 이후 처음 실시된 이란 총선이 중도?개혁파의 압승으로 끝났다. 2월 29일 발표된 최종 개표 결과 실용주의와 온건보수를 표방하는 중도?개혁파가 최소 158석을 차지해 전체 290석의 과반을 훌쩍 넘어섰다. 반면 핵 협상에 반대하는 강경보수 세력은 68석을 얻는 데 그쳤다. 최대 격전지이자 민심의 척도로 꼽히는 수도 테헤란에서는 30석 모두를 중도?개혁파가 휩쓸었다. 중도?개혁파가 이란 의회에서 다수파가 된 것은 2000년 이후 16년 만이다. 특히 이번 선거 결과는 개혁 바람을 차단하기 위한 보수세력의 조직적 불법 선거개입을 극복한 끝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선거 후보자에 대한 자격심사를 하는 헌법수호위원회가 지난달 사전 후보심사에서 개혁세력을 무더기로 탈락시키는 바람에 개혁파는 200여명 만이 총선에 나설 수 있었다.
의회 선거뿐이 아니다. 국가서열 1위인 ‘최고지도자’를 뽑는 권한을 가진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위원 선거에서도 중도파가 전체 88석 가운데 52석을 차지했다. 최고지도자는 신정일치 정치체제에서 군과 사법부의 수장을 임명하고, 국가 중대사의 최종 결정권을 쥔 명실상부한 최고 권력자다. 임기는 8년이지만 무제한 연임이 가능해 사실상 종신직이다. 현재는 강경보수파인 알리 하메네이(76)가 최고지도자다. 그러나 하메네이가 고령이고, 전립선암을 앓고 있는 등 건강 이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다음 운영회의 임기 중 최고지도자가 선출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 경우 실용주의 개혁파의 리더이자 핵 협상 타결을 이끈 하산 로하니(67) 대통령이 최고지도자로 올라설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이란 국민이 던진 선거 메시지는 변화와 개혁이다. 이란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14%지만 실제 체감률은 30% 이상이라고 한다. 게다가 10년 이상 계속된 서방의 경제제재로 투자가 얼어붙고, 이로 인해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층의 분노는 극에 달한 상태다. 핵개발로 서방과 무모한 대립 노선을 걷다가 경제를 피폐하게 한 보수세력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자 핵 협상 타결 이후에도 개혁정책에 지지부진한 로하니 정부에 대한 채찍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이란의 선거혁명은 4차 핵실험으로 유엔 안보리 제재가 임박한 북한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란이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한 데는 서방의 강력한 경제제재가 출발점이 됐다. 핵 협상이 지지부진하던 2013년 치러진 대선에서 로하니 정부가 등장한 것도 같은 배경이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가 북한을 핵무기의 미몽에서 깨어나게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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