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주변에 지쳤다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버티는 데까지는 버텨야겠지만 솔직히 언제나 해가 뜨려나 싶다.” 29일 오후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의 한인회관 인근에서 만난 한 교민은 밤잠을 설친 듯했다. 10년 넘게 중국 파트너와 함께 북한에서 수산물을 들여와 팔아온 그는 “지금까지는 희망 하나로 버텼는데 빈 말이 아니라 정말 힘들다”며 고개를 떨궜다.
또다시 한 주가 시작된 이날 북중교역의 최일선에 위치한 단둥시는 여느 때와 크게 다름 없었다. 단둥해관(세관) 앞은 대형 컨테이너를 운반하는 트럭행렬로 북새통을 이뤘고, 컨테이너에 ‘평북’(평안북도) 두 글자가 선명한 트럭도 여럿 눈에 띄었다. 북한을 오가는 화물이 세관업무 전에 거쳐야 하는 화위안(花園)물류센터에도 트럭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대북제재라는 엄중한 국제정세와 달리 압록강대교를 거쳐 북한으로 물품이 들어가는 데에 문제가 없을 것임을 짐작케 하는 장면이다.
한국과 북한의 물품이 주로 팔리는 ‘고려거리’도 휴일인 전날과 달리 오전부터 꽤나 활기가 있어 보였다. 북한에서 들여온 인삼과 버섯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지금 봐선 별로 특별한 게 없다”고 했다. 북한 주민들이 장마당에 내다 팔 물건들을 대량으로 사가는 신류(新柳)시장ㆍ쇼핑몰 앞에서 노점을 하는 한 조선족 동포에게 ‘조선(북한)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물었더니 “평일에는 일하러 나가니까 거의 없다”면서 “어제도 많이들 와서 한 보따리씩 사가지고 갔다”고 말했다. 실제 신류시장ㆍ쇼핑몰 내부 상점들 중에는 중국의 오성홍기와 북한의 인공기를 함께 걸어두고 장사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만난 교민들은 하나 같이 불안감과 긴장이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아직까지 눈에 띄는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대북제재안이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교민들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한인회 사정을 잘 아는 한 교민은 “상당수 교민들이 대북사업과 한중 간 교역에 종사한다고 보면 된다”며 “한 때 5,000명이 넘던 교민 수가 700명 정도까지 줄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더 줄어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 대북사업가는 ‘양빈 파문’(2002년)과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5ㆍ24 조치(2010년), 장성택 처형(2012년), 북한 핵실험(2006년ㆍ2009년ㆍ2013년)에 따른 대북제재 등을 거론하며 “몇 년에 한번씩 꼭 홍역을 치르는데 이번엔 또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양빈 파문은 북한이 양빈(楊斌) 전 중국 어우야(歐亞)그룹 회장에게 신의주특구 개발을 맡기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지만 그가 탈세 혐의로 중국 당국에 체포된 뒤 유야무야 된 일이다. 그 이후 전반적인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였다.
중국이 대북제재에 소극적일 것이란 전망도 없지 않지만, 이마저도 교민들에겐 큰 위안이 되지 못하는 듯했다. 지역 사정에 정통한 한 대북 소식통은 “유엔 결의안이 통과되고 나면 중국도 어떤 식으로든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품에 대한 검사를 강화하고 통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몇 달 지난 후에는 상황이 다소 나아질 수 있겠지만 초반 얼마간은 북중교역이 크게 위축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단둥에서 여행업에 종사하는 한 교민은 “북중교역도 문제지만 한중 간에 사이가 틀어지면 동북3성의 조선족 전체가 타격을 받는다”면서 “북한은 포기한 지 이미 오래이고 그나마 한국과 중국만이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단둥=글ㆍ사진 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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