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통해 치료비 돌려 받아”직장인 등 툭하면 이용
“불경기 개원가의 오아시스” 수액전문병원까지 등장
효능ㆍ안전성 우려 속 의료계 일각 “프라시보 효과일뿐”
최근 독감에 걸린 회사원 A씨는 점심시간을 틈타 회사 근처 내과의원을 찾았다. 고용량 비타민C주사를 맞기 위해서였다. 주사실은 대학병원 특실처럼 깨끗했고 대형 TV까지 갖춰져 있었다. 침대에 누운 A씨는 수액이 투여되자 이내 잠에 빠져 들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간호사가 깨워 일어나니 몸이 정말 개운했다. 독감에 걸렸지만 과중한 업무와 상사눈치 때문에 휴가를 낼 수 없었던 A씨는 주사 맞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실손보험 가입자라 주사비도 돌려받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비타민주사, 칵테일주사, 비욘세주사 등 우후죽순
대한민국이 수액주사 늪에 빠졌다. 감기에 걸려도, 조금만 피곤해도 너나 없이 수액주사를 맞는다. 과거에는 기력 없는 노인들이 찾는 주사에 불과했지만 최근 치료범위가 확대되면서 수액주사 열풍이 불고 있다.
본래 수액주사는 생리식염수나 포도당처럼 단순 수액공급이 주된 목적이다. 수술 전후 식사가 불가능한 환자를 위해 아미노산을 공급하는 혈관영양주사도 수액주사의 일종이다. 최근 들어선 비타민 마그네슘 칼슘 등 각종 영양성분을 혼합한 주사제가 유행하고 있다. 비타민B1이 주요 성분인 마늘주사와 비타민C 1,000mg을 한 번에 주입하는 고용량 비타민C 주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주사는 직장인들이 선호한다.
고3 수험생들을 위한 맞춤 수액주사도 있다. ‘은행 칵테일주사’로 불리는 것이다. 은행잎 추출물인 징코 성분과 비타민의 혼합물로 수험생과 학부모 사이에서 집중력 향상에 도움 준다고 입 소문이 퍼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피부 톤을 밝게 해주는 주사도 있다. ‘비욘세 주사’로 불리는 이 주사는 활성산소를 억제ㆍ제거해 준다는 글루타치온 성분에 비타민과 무기질을 배합한 것이다. 미국 유명 팝가수 비욘세가 이 주사를 맞은 뒤 찍힌 파파라치 사진이 공개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사진 속에서 비욘세는 피부가 하얗고 광이 났다.
체중감량과 피로회복을 돕는 주사도 있다. ‘신데렐라’ 주사다. 알파리포산이 주 성분인 이 주사는 비타민C보다 400배 강력한 항산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체지방 분해와 노화방지에 도움을 준다고 인식돼 여성들이 선호한다.
“실손보험으로 부담 적어” 툭하면 주사
주사제의 효과가 소문대로라면 만병통치약인데 효능과 안전성이 뚜렷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 의료계 반응이다. 효능과 안전성을 담보할 임상시험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교수는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플라시보’효과가 대부분”이라면서 “급여환자 치료만으로는 병원 운영이 어려운 개원의들과 제약사, 단 시간 내 치료효과를 얻고 싶은 환자 욕구가 맞물려 시장이 팽창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비급여 수액주사 시장은 급팽창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2013년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비급여 주사료는 2010년 8.7%에서 2013년 25%로 급증했다. 연구원은 “미용성형 등 진료 부문이 제외됐기 때문에 실제 비급여 주사료 비율은 더 높다”고 했다.
환자 본인이 치료비를 100% 부담함에도 비급여 주사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실손보험을 통해 치료비를 돌려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굴지의 대형보험회사 설계사는 “비타민C주사 등을 맞아도 치료목적으로 주사를 맞았다는 진료확인서를 제출하면 고객이 부담한 진료비를 돌려 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손보험이 비급여 주사시장을 키우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급여 주사제는 개원의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서울 종로구에서 10년째 내과를 운영하고 있는 한 개원의는 “2년 전부터 수액주사를 놔 달라는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솔직히 개원의가 수익을 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수액주사”라고 했다. 이에 따라 수액주사만 전문으로 하는 의원들도 생기고 있다. 개원가에서는 이런 의사들을 ‘수액전문의’라고 부른다. 수액주사 전문병원은 동대문, 강남역 등 회사 밀집 지역에서 주로 늘고 있다.
“개원가 블루오션” 전문의, 전문병원까지 등장
주사비용은 지역별로 천차만별인데, 대개 병원 임대료가 비싼 곳이 수액주사 비용도 더 높다. 가격 담합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 개원의는 “비타민C 주사비를 원가로 받았다가 주변 의원들의 항의를 받고서 값을 올렸다”고 털어놨다.
주사세 ‘장사’를 하는 개원의 뒤에는 주사제를 제조ㆍ유통하는 제약업체들의 탐욕이 있다. 개원의들은 “제약사 영업사원이 다른 의원에서 수액주사를 통해 한 달에 1,000만원대 수입을 올렸다며 거래를 제의해오면 거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효과와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는 수액주사들이 만병통치약처럼 활개치고 있지만 보건당국은 관리를 손 놓고 있다.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들은 비급여 주사 관련 자료를 달라는 기자 요구에 대해 하나 같이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고 발뺌을 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수액주사제 열풍에 대해 “현실적으로 치료 목적보다는 영리 추구를 위해 남용되고 있다”며 “우리 의료계의 문제점을 드러낸 단면”이라고 비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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