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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몰랐나?!] 연주회의 디저트, 앙코르

입력
2016.02.2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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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관객에게 신청곡을 받고 있다. 1시간여 계속된 앙코르 연주와 이어진 사인회로 상당수 관객들이 버스와 지하철을 놓치면서도 "연주도 잘하는데 예의도 바르다"며 들뜬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크레디아 제공
2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관객에게 신청곡을 받고 있다. 1시간여 계속된 앙코르 연주와 이어진 사인회로 상당수 관객들이 버스와 지하철을 놓치면서도 "연주도 잘하는데 예의도 바르다"며 들뜬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크레디아 제공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27일 예술의전당 독주회가 화제다. 1, 2부 정규 프로그램을 꽉 채워 연주한 뒤에도 10곡의 앙코르를 연거푸 연주하며 1시간 가량 공연을 더 이어갔기 때문.

거슈윈의 ‘서머 타임’을 시작으로 드뷔시의 ‘렌토보다 느리게’, 프로코피예프의 ‘토카타’ 등 독주회 테마였던 1900년대 초반 작곡가들의 대표작들을 들려준 손열음은 6번째 앙코르곡 연주 후 “준비한 곡은 모두 끝났다”며 즉석에서 신청곡을 받았다. 신난 청중들이 신청곡을 외쳤고, 앙코르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손열음은 이튿날 한국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2016년이라 6곡을 준비했는데 너무 좋아해주시니 감사한 마음에 즉석에서 연주를 이어갔다”고 말했다.

‘다시’라는 뜻의 프랑스어 앙코르(encore)는 방금 들었던 곡이나 다른 곡을 추가로 연주해달라는 요청. 오페라, 뮤지컬, 음악회 등에서 정규 프로그램 공연을 끝낸 연주자의 커튼콜 후, 디저트처럼 앙코르 연주가 이어진다. 관객 박수에 대한 예의에서 시작한 앙코르 연주는 1800년대 유럽에서는 연주자가 앙코르를 몇 곡 연주하느냐에 따라 몸값을 정할 정도로 중요한 ‘의식’으로 자리잡았다. 앙코르가 많다는 건 청중들의 반응 역시 뜨겁다는 방증이기 때문. 연주자의 화끈한 퍼포먼스나 크고 작은 소동은 대개 앙코르 연주에서 나온다.

앙코르 연주의 대가는 누가 뭐래도 피아니스트 호로비츠. 청중을 향해 ‘딱 한 곡만 더 연주하겠다’는 손가락 제스처를 보내고 의자에 앉자마자 재빨리 연주를 하고, 여운이 다 사라지기도 전에 익살스런 표정으로 피아노 위에 올려놓은 행커치프를 들며 일어서는 모습은 호로비츠의 트레이드마크로 알려져 있다. 이런 ‘쇼’를 통해 그는 다른 연주자들의 3, 4배 연주료를 받는 인기몰이를 했다.

최근 앙코르 연주로 화제가 된 음악가는 러시아의 천재 예프게니 키신이다. 2살부터 영재 교육을 받은 키신은 건반의 가장 정확한 타격 지점을 찾아내 정확하고 빈틈없이 연주하는 ‘컴퓨터 피아니스트’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뚝뚝한 무대 매너와 달리 2006년 첫 내한공연과 2009년 두 번째 공연에서 각각 10곡의 앙코르를 들려주며 키신 마니아를 만들었다. “관객들이 내려 보내지 않는 한 앙코르를 선사한다”고 선언한 키신의 연주회는 쏟아진 환호로 아이돌 콘서트를 방불케했다.

2013년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베토벤 교향곡 연주회에서는 1바이올린, 2바이올린 단원들이 단체로 자리를 바꿔 교향곡 1번 4악장을 다시 연주해 화제를 불렀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2010년 첫 국내 독주회에서 “딱 한 곡만 앙코르로 준비했다”며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총 16곡)을 연주했다.

이렇게 앙코르에서 과감한 퍼포먼스를 시도하는 연주자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연주자들은 본 프로그램의 여운을 흐트러트리기 싫어 앙코르를 과감히 생략하기도 한다. 손열음은 “그날 객석 반응에 따라 다르다”며 “여운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곡을 연주할 때면 앙코르를 아예 연주하지 않을 때도 있다”고 했다. 지난 해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한 LA필하모닉의 말러 6번 교향곡 연주회는 앙코르 없이 끝났다. 1월 서울시향의 말러 6번 교향곡 연주회 역시 앙코르가 없었다. 2월 쇼팽콩쿠르 우승자 갈라콘서트 무대에 선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2시와 8시 공연에서 앙코르를 한 곡 씩만 연주했다. 곽범석 서울시향 홍보팀장은 “정규 연주곡 자체가 높은 난도를 가진 경우 지친 단원들을 배려하고 곡의 여운을 남기기 위해 상당수 음악가들이 앙코르 연주를 생략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베토벤 ‘합창 교향곡’, 헨델의 ‘메시아’ 바흐의 ‘마태 수난곡’처럼 합창을 동반하는 대곡에서는 앙코르를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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