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 총영사관서 3년반 근무
베트남어 야학하며 한글로 옮겨
“노동자 보호에 초점이 맞춰진 베트남의 노동법을 이해해야 한국 기업들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베트남은 중국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국내기업(4,300여개)이 진출해 있는 나라이지만,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베트남의 법과 제도는 국내 기업에게 제대로 소개돼 있지 않다. 2012년 8월 주 호치민 총영사관에 고용노동관으로 부임, 3년 반 동안 근무한 뒤 이달 초 귀국한 최태호(44) 고용노동부 규제개혁 법무담당관은 부임과 함께 시행착오를 겪는 한국기업들의 사례를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예컨대 베트남 노동법에는 ‘임금표’라는 개념이 있는데 업무능력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책정하는 일종의 성과주의 임금체계다. 하지만 국내기업들이 이를‘호봉제’로 잘못 이해해 업무 능력과 무관하게 연차에 따라 임금을 인상해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기도 했다.
최근 출간된 ‘베트남 노동법령집’은 국내기업들이 겪는 이런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최 담당관 노력의 산물이다. 그가 베트남 노동법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동남아 국가 중 노동법 전문이 우리 말로 완역된 사례는 처음이다. 부임 당시 베트남어 알파벳도 몰랐지만, 야학으로 베트남어를 익혀가며 평일 업무 외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3년 간 이 책을 집필했다.
책은 노동법, 노동조합법, 사회보험법, 고용법 등 6개 관계 법령을 망라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노동권 보호에 초점을 맞춘 부분이 많은 것이 특징. 노동법은 사회보험 기금으로 여성노동자들에게 6개월의 출산휴가(임금 100%)를 보장, 한국보다 3개월 이상 더 보장한다. 사회보험법은 노동자가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다쳤을 때 최소 30일 이상의 질병휴가(임금 75%)를 허용하고 있다. 노사가 취업규칙에서 ‘병가’사유로 정해야 가능한 한국의 제도보다 친노동적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노사 문제가 법정으로 가더라도 기업에게 유리하지 않은 편이다. 최 담당관은 “명백한 증거를 갖고 징계해고 한 노동자에 대해서도 법원이 노동자의 손을 들어줄 정도로 노동자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개발도상국임에도 노동법만 놓고 봤을 때는 선진국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설명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그의 바람은 베트남 뿐 아니라 최근 국내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한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들의 노동법 해설서가 좀더 나와 보다 많은 한국기업들이 성공적으로 사업을 해 나가는 것이다. 그는 “보통 해외진출이라 하면 도전적이고 멋진 일로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언어와 제도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우리 사업가, 노동자들이 많다”며 “장기적으로는 노동 분야뿐 아니라 관세나 환경 등 다른 분야에서도 우리말 자료집이 좀더 번역돼야 할 것”이라 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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