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약 저평가되거나 기록 안 남아
"시대상 반영해 별도의 기준 필요"
‘유관순 열사 외에 여성 독립운동가를 아느냐’는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에 대한 염원에는 남녀 구분이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여성 독립운동가는 남성에 비해 알려진 바가 적다.
그나마 지난해 영화 ‘암살’이 인기를 끌면서 주인공 안옥윤의 실제인물로 알려진 남자현(1872~1933) 의사 등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졌지만 광복 70주년이 지나도록, 일반인들에게‘여성 독립운동가=유관순’이라는 공식만 통한다. 올해 3ㆍ1절을 기준으로 국가보훈처에서 훈ㆍ포상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1만4,329명, 이 중 여성은 272명(1.9%)에 지나지 않는다. 보훈처에서 발굴한 전체 여성 독립운동가 규모(2,747명)에 비하면 포상은 10%에 불과하다. 자료가 부족하거나 행적이 확인되지 않아 포상에서 제외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일제강점기부터 강고했던 남성중심의 사회구조로 인해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약상이 저평가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치마 속에 군자금을 숨겨 압록강을 건넜던 정정화 선생처럼 당시 많은 여성들이 태극기와 서류를 감춰 운반하고, 군수물자를 보자기에 싸서 운반하는 등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나 무장투쟁을 우선시 한 남성 중심 기준에 의해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었다. 김희선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장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 독립운동은 기록으로 남지 못해 묻힌 사례가 적지 않다”며 “지금도 입증이 어려워 발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일제의 남녀 양형 기준이 달라 정부가 인정하는 독립유공자 기준을 통과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3개월 이상 감옥생활을 하거나 6개월 이상 독립운동을 해야 유공자 자격을 갖추지만 당시 여성은 남성에 비해 형량이 적어 공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은 “서대문형무소 수형자 기록카드에 남아 있는 181명의 여성 가운데 13명만 서훈을 받았다”며 “시대상을 반영해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별도의 유공자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일제치하 여성들은 전면에 나서기보다 지원활동이 많아 기록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맞다”면서도 “유공자 서훈은 활동 사실이 자료로 확인돼야 하는 만큼 남녀로 구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밝혔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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