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발명이나 히트 상품 등 혁신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괴짜들의 시선에서 탄생하는 경우가 많다.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해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호주의 배리 마셜, 로빈 워렌 박사는 위장병이 강한 산(酸) 때문에 발생한다는 통설과 달리 박테리아가 원인이라고 봤다. 이들은 잘못된 통념을 깨기 위해 직접 박테리아를 마셔 위궤양에 걸리며 주장을 입증했다. 히트상품인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도 직원들이 화장실에서 핸드 드라이어를 다루다가 원리를 주목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처럼 당연시되는 통념을 깰 수 있는 괴짜가 많아야 혁신이 가능한데 국내 기업들의 조직 문화에서 괴짜들이 설 자리는 거의 없다. LG경제연구원의 강승훈 책임연구원은 창의성을 제약해 혁신을 방해하는 조직 내 금기를 문제로 짚었다.
주로 비판과 견제가 금지된 ‘성역’이 존재하는 조직, 최고경영자의 어록을 절대적인 신탁처럼 떠받드는 조직,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상처가 돼 실패했던 상황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조직, 재앙이 예상되는 데도 기득권층을 의식해 언급조차 하지 못하는 조직이 여기 해당한다. 강 연구원은 “일부 국내 기업은 여전히 권위적 위계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고 조직 상층에서 비롯된 금기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가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와 함께 100대 기업 직장인 4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우리 기업의 비효율적 업무 관행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응답자의 66.3%가 “주 5일 가운데 이틀 이상 야근한다”며 ‘회의가 끝날 때까지 무조건 대기하라’는 생각 없는 상사들, 야근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문화 등을 이유로 꼽았다.
도미니크 바튼 맥킨지 회장도 국내 기업의 문제점으로 불투명하고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꼽았다. 맥킨지는 한국의 기업문화 수준을 글로벌 하위 25%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야근과 회의, 보고, 여성, 규범준수 등의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최원식 맥킨지 서울사무소 대표는 “한국은 근로시간이 가장 길면서 생산성이 가장 낮은 국가”라며 “근면 성실만 강조하는 장시간 근로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기업의 조직 문화는 기업의 ‘새로운 피’가 되는 청년 구직자들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채용정보업체 잡서치가 지난 25일 청년 구직자 4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문화의 구직영향’ 설문조사에 따르면 입사 결정 요인으로 ‘기업문화’를 꼽은 응답자가 전체의 45%였다. 입사를 주저하게 만드는 기업문화로 야근과 회식 등 고질적인 밤샘문화(28.9%), 위계질서가 엄격한 군대식 문화(27.6%), 대표자 중심의 독재 문화(21.6%) 등이 꼽혔다.
한준규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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