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가 정상인에 비해 진실을 보는 눈이 더 날카롭다.”(지그문트 프로이트) 에이브러햄 링컨, 빈센트 반 고흐, 버지니아 울프, 헤르만 헤세 등 우울증의 고통을 극복하고 인류사에 큰 성취를 남긴 정치가와 예술가들이 많다. 우울증을 앓았던 소설 ‘모비딕’의 저자 허먼 멜빌은 “이성과 계시의 빛은 깊은 우울증만큼 인간의 진실에 대한 통찰을 던지지 못한다. 우울증 환자에게 완전한 어둠은 빛이 되고, 보통 사람들에게 맹목으로 보이는 그 수단(우울증)을 통해 그들은 고양이처럼 모든 사물을 환히 꿰뚫어 본다”고 했다.
▦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로 불릴 만큼 흔하지만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무기력증, 바보가 된 느낌, 극단의 불안함, 병적인 경계심 등으로 고생했다.”(링컨) 17세기 ‘우울증의 해부’라는 책에선 이렇게 묘사한다. “이것은 인간적인 고통의 바다이고 모든 인간적인 불운의 정점이다. 어떤 신체적인 고통도 이에 견줄 수 없으며, 어떤 고문도, 어떤 뜨거운 강철도 이에 비할 수 없다. 어느 폭군이 고안한 고문기구들 중의 어떤 것도 이것이 가져다 주는 고통과 고문에는 미치지 못한다.”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3분의 1 이상이 정서적 스트레스를 겪었고, 이 중 56%가 우울증을 의심했다. 국내 자료를 봐도 국민 4명 중 1명은 정신질환을 경험하며, 8명 중 1명은 알콜ㆍ마약ㆍ도박ㆍ인터넷 등 4대 중독자로 추정된다. 그러니 한국인의 건강만족도가 OECD 평균(68.8점)보다 20점 이상 낮은 꼴찌라는 게 이해가 간다. 우울증이 무서운 건 자살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2014년 자살로 사망한 한국인은 하루 40명꼴인 1만3,836명. OECD 회원국 중 12년 연속 자살률 1위다.
▦ 그런데도 상담 및 치료를 받은 정신질환자는 15%에 불과하다. 우울증의 90%는 약물로 조절되지만 항우울제 복용량은 OECD 국가 중 꼴찌다.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진료기록이 취업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뒤늦게 정부가 정신과 문턱을 낮추고 조기 치료를 확대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편견을 조장하는 법제에 대한 조사도 진행키로 했다. 무엇보다 국민의식이 변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을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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