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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종 동식물의 보금자리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 지정

입력
2016.02.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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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2월 26일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 1989년 9월 제임스 베이커 당시 미 국무장관과 세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이 저기서 군축회담을 했고, 석 달 뒤 H.W.부시와 고르바초프가 얄타에서 만나 “동서가 냉전체제에서 새로운 협력체제로 접어들게 됐다”고 공동 선언했다.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 1989년 9월 제임스 베이커 당시 미 국무장관과 세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이 저기서 군축회담을 했고, 석 달 뒤 H.W.부시와 고르바초프가 얄타에서 만나 “동서가 냉전체제에서 새로운 협력체제로 접어들게 됐다”고 공동 선언했다.

미국 와이오밍 주 옐로스톤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건 1872년이다. 3개 주 약 9,000㎢에 달하는 광대한 공간. 환경운동가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랜드 티턴(Grand Teton)은 거기서 제외됐다. 고작 16km 남쪽이었고, 잭슨 홀 계곡을 따라 마을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서였다. 1907년 그랜드 티턴의 산정호수 잭슨 레이크에서 발원한 스네이크 강 상류에 첫 댐이 건설됐다. 통나무 댐이 콘크리트 댐으로 바뀌고, 댐 높이가 높아지고, 추가 댐 건설 계획이 수립되고….

옐로스톤 국립공원 관리책임자였던 환경주의자 호레이스 올브라이트(Horace Albright, 1890~1987)는 티턴 레인지의 자연과 풍광을 누구보다 귀하게 여긴 사람이었다. 산과 수많은 산정호수와 강과 평원, 거기 깃들인 수많은 생명의 공간이 붕괴되면 옐로스톤의 생태계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게 뻔했다. 그는 그랜드 티턴 지역을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포함시키고자 애썼다.

주민들은 이왕 공원이 될 거면 독자적인 공원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규모는 옐로스톤에 댈 수 없지만 값어치는 조금도 모자라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의회 등을 상대로 한 고된 설득 끝에 약 390㎢ 그랜드 티턴의 산들과 평원이 1926년 2월 26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댐 저지의 급한 불은 껐지만, 그랜드 티턴을 보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석유 재벌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가 그 지역을 방문한 게 그 무렵 20년대 말이었다. 올브라이트는 록펠러 부부에게 그랜드 티턴의 풍경과 계곡 마을 잭슨 홀의 어지러운 개발 현장- 네온 사인 간판과 전신주들, 버려진 댄스홀 등- 을 보게 했고, 록펠러는 사재를 털어 그 지역 땅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반대, 지역 의회의 반대. 록펠러는 당시 내무장관이던 해럴드 아이크스에게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지 않으면 토지 전부를 공화당에 기부하겠다”는 편지를 썼고, 민주당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3년 록펠러가 사 모은 땅과 인근 국유림 등 약 890㎢를 대통령 권한으로 국가명승지(National Monument)로 지정했다. 1950년 국립공원과 국가명승지가 합쳐져 오늘날의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이 됐고, 잭슨호수와 옐로스톤 국립공원 연결로에 록펠러 기념 파크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올브라이트-록펠러 파크웨이라 명명했다면 더 멋졌을 것이다.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의 수천 종 동식물의 서식지가 그렇게 지켜졌다. ‘떠돌이 개와 함께 한 행복한 나의 인생’(황소연 옮김, 민음사)의 작가 테드 케라소티(Ted Kerasoke)도 거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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