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이 뜨겁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은 관광전장. 지난 몇 년 간 한국은 일본을 멀찍이 앞서 나갔다. 하지만 일본의 추격은 매서웠다. 2014년 외래관광객 1,350만명을 기록하며 뒤를 바짝 좇더니, 급기야 작년엔 한국을 크게 넘어섰다. 한국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복병에 허덕이고 있을 때 일본은 엔저의 훈풍을 타고 저만치 앞서 달렸다. 결과는 1,974만명 대 1,323만명, 일본의 압승이었다.
일본의 승승장구에는 ‘아베의 관광입국’이라는 위로부터의 고강도 드라이브가 있었다. 일본은 비자 간소화, 시내 면세점 등 한국이 비교우위에 있던 비책들을 벤치마킹 해 발 빠르게 대응했다. 사후면세점 등은 오히려 앞서나가 한국이 따라가는 형국이다.
한국 관광은 한류와 쇼핑이라는 걸출한 투 톱이 워낙 좋은 성적을 내 이들에게 너무 많은 걸 의존해왔다. 공을 잡으면 무조건 이들에게 쏘아 올리는 식의 뻥축구에 길들여지다 보니 내국인 관광이라는 든든한 후방과 지역 관광이라는 촘촘한 중원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뒤가 튼튼하지 않으니 섀도 스트라이커 같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도 힘들다. 한국 관광의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때다.
그라운드를 넓게 써라
한국 관광의 편향성은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4외래관광객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80.4%(중복 응답)가 서울을 방문했다. 그 다음이 제주(18.0%), 경기(13.0%) 순이다. 외래관광객 대부분이 수도권 아니면 제주에만 몰린다는 이야기다.
외국인 관광객에게 서울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한국의 또 다른 매력을 개발하고 그것을 명품화시켜야 재방문을 불러들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시장 개척에만 나설 게 아니라 재방문을 유도하는 콘텐츠를 구축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관광의 전국화를 통해 재방문 및 체류기간 확대를 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국과 일본, 대만 등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한 번에 모든 걸 경험하려 들지 않는다. 지역 관광이 활성화된 일본처럼 한국도 지역으로의 확산 전략과 한국적 매력을 나타낼 수 있는 관광상품 확대가 요구된다.
2011년 일본대지진으로 방일관광객이 뚝 끊어졌을 때 일본이 활로를 찾은 건 지역이었다. 원전사고 지역과 먼 홋카이도와 오키나와 등을 시작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고 그 범위를 일본 전역으로 넓혀갔다.
후쿠마스 시니치 JNTO 동아시아 수석매니저는 “한국과 대만 관광객은 규슈와 오사카 등에 주로 몰리고, 중국인 관광객은 홋카이도와 도호쿠 지역 등을 많이 방문하는 게 특징”이라고 전했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서울에 몰리는 것과 달리 일본을 찾는 유커들은 일본의 지역 명소들을 찾아 다닌다는 것이다. 중국 베이징의 여행사들도 일본 관광의 강점을 지역의 다양한 볼거리에서 찾았다. 베이징의 CWTS 여행사 한국 담당 왕리웨이씨는 “한국은 도시관광, 특히 쇼핑에 강점이 있지만 일본은 도쿄 외에도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다양한 자연 풍경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러더 여행사의 첸쉬씨는 “한국이 싸서 가는 나라가 아니라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가보고 싶은 나라로 만드는 데는 지역의 역할이 크다”고 충고했다.
볼 건 많은데 가기가 힘들다
한국관광공사와 한국방문위원회 등은 지역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외국인관광객 전용 셔틀버스 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이들 상품을 이용한 관광객들의 만족도는 높다. 서울로만 각인됐던 한국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을 묶어 내놓은 상품들이 크게 히트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관광공사 일본지사가 진행했던 부산으로 입국해 전주와 백제문화지구를 둘러보고 인천공항으로 나가는 상품은 큰 인기를 얻었고 역 방향의 상품까지 출시하게 만들었다. 도쿄의 NOE여행사 마츠우라 신이치씨는 “일본 중장년층 중심으로 한국 지방 관광 수요가 있으며 특히 유네스코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문화권에 대한 수요가 높다”고 말했다.
문제는 외국인들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 최근 한국을 찾는 방문객의 70% 이상은 단체가 아닌 개별관광객이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 중에는 10번 이상 온 마니아층이 많다. 그들은 지역 관광도 많이 원하지만 혼자 찾아가기가 쉽지 않아 꺼리고 있다. 불편한 교통과 외국어표기 부족 등을 지적한다”고 말했다.
지역관광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이동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다. 한국의 지방을 가는 상품은 서울만 가는 상품 보다 배 이상 비싸다. 한국의 국제노선이 유지되는 공항은 서울과 부산, 제주뿐이다. 지역을 가려면 이들 거점을 무조건 거쳐 장거리 열차나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28개의 공항에서 국제노선이 운용되고 있다. 도쿄 등을 거치지 않는 지역 관광이 활성화한 이유다. 일본 지방 공항의 국제화는 20여 년 전 버블경제의 붕괴, 노령화 등으로 지역 경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하고자 추진됐다. 지방 공항의 국제노선 유지를 위해 일 정부에선 오랜 기간 예산을 투입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노력을 통해 자리 잡은 지방 공항이 지역 관광 및 지금의 일본 전체 관광 시장 부흥의 기반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과 교수는 “서울을 거쳐 지역을 다니는 여행상품으론 재방문을 높이기 쉽지 않다. 한 지역을 바로 찾아가 둘러볼 수 있는 권역 관광이 필요한 이유”라며 “서울 중심에서 지역거점 도시권역(광주권, 부산권, 강릉ㆍ평창권, 대전ㆍ청주권)으로 확산해 경쟁력 있는 지역관광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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