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의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반발한 야당 의원들이 47년 만에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에 나선 가운데, 필리버스터는 의회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미 상원 기록에 따르면, 의회 사상 가장 긴 필리버스터 기록은 1957년 스트롬 서몬드 전 상원의원이 갖고 있다. 그는 공민권법(인권법)에 반대해 24시간 18분(8월 28일 오후 8시 54분~29일 오후 9시 12분) 동안 연설했다. 서몬드 전 의원은 연설 전 증기목욕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내 수분을 최대한 배출해 연설 도중 화장실을 찾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 연설 도중 배가 고플 때에는 다른 의원들에게 질문을 던져 답변을 들었다. 다른 의원들이 얘기하는 동안 재빨리 샌드위치를 꺼내 먹으며 허기를 달랬던 것이다.
또, 제트기 예산 삭감 반대를 주장한 알폰스 다마토 전 상원의원(23시간 30분ㆍ1986년), 논쟁을 좋아해 ‘상원의 호랑이’로 불린 웨인 모스(22시간 26분ㆍ1953년), 로버트 라폴레트(18시간 23분ㆍ1908년), 윌리엄 프록스마이어(16시간 12분ㆍ1981년) 등도 긴 필리버스터로 유명하다. 지난해 5월에는 미국 공화당 랜드 폴 상원의원이 국가안보국의 무차별 정보 수집 중단을 요구하면서 10시간 30분에 걸친 연단 시위를 벌였다.
긴 연설 시간을 채우려다 보니, 연설 내용 중 일부는 자신의 주장과 관련성이 없는 경우도 많다. 서몬드 전 의원의 경우, 독립선언서와 인권법 내용, 조지 워싱턴 전 대통령의 퇴임 연설문 등을 읽으며 시간을 지체시켰다. 이 밖에 전화번호부를 줄줄 읽거나 세익스피어의 소설을 읊는가 하면, 굴 요리법, 차(茶) 제조법을 소개한 의원도 있다.
한편, 미국 대선경선 후보로 나선 버나드 샌더스(민주당) 후보와 테드 크루즈(공화당) 후보도 필리버스터로 주목 받은 정치인이다. 샌더스는 지난 2010년 12월 10일 정부의 부자 감세에 반대해 8시간 37분 동안 연설을 했다. 비록 부자 감세를 담은 합의문은 통과됐지만, 샌더스는 이 연설을 통해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일약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다. 그의 연설은 ‘버니 샌더스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크루즈 후보도 2013년 9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안을 막고자 21시간 19분에 걸친 긴 연설을 했다.
미국 상원(100석)에서는 법안ㆍ결의안을 통과 시키기 전 토론 종결 투표를 진행해야 하며, 60명 이상이 찬성해야 토론이 종결되면서 필리버스터를 막을 수 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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