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닝 매출 반토막 난 상황서도
“연구개발 축소는 미래 어둡게”
투자 액수 되레 상향 조정
아사히, 토요타 성장 발판도 R&D
삼성전자, 애플, 화웨이 등 내로라하는 스마트폰 업체들은 대부분 고급 제품의 액정화면에 특별한 강화유리를 사용한다. 바로 코닝의 ‘고릴라 글라스’다. 코닝의 최신 제품인 고릴라 글라스4는 두께가 0.4mm에 불과하지만 쉽게 파손되지 않고 떨어졌을 때 충격을 견디는 내구성이 뛰어나다. 따라서 전세계 주요 스마트폰 제품들이 얇으면서도 충격에 잘 견디는 스마트폰을 만들려면 고릴라 글라스를 찾을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고릴라 글라스는 우연히 나온게 아니다. 1851년 설립된 코닝은 끊임없는 연구개발(R&D)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구조조정 시기에도 연 매출 10%를 R&D에 재투자했다. 특히 투자액 가운데 70% 정도를 5~10년 내 결과를 볼 수 있는 단기연구에, 나머지 30%는 10년 이상 중장기 연구에 쏟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경쟁사들보다 앞서 저팽창 내열유리(1908년), 내구성이 강한 조리기구와 실험기구 ‘파이렉스’ (1913년), 플라스틱과 유리의 특성을 함께 갖춘 가공소재 ‘실리카’(1934년), TV 브라운관(1947년), 광섬유(1970년) 등을 선보이며 업계를 선도했다.
재계에서는 요즘 같은 불경기를 기업들의 옥석을 가리는 시기로 보고 있다. 쓰러지는 기업도 있지만 오히려 어려운 상황을 도약의 기회로 삼는 기업도 나오기 때문이다. 그 승패를 R&D 투자가 가르고 있다.
맥킨지앤컴퍼니가 미국 제조업체 1,30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버블붕괴 이전 매출 상위 25%에 들었던 업체 가운데 경제 침체 이후 상위권을 유지한 기업은 60%에 불과했다. 반면 같은 기간 하위 75%에 속했던 업체 중 14%가 상위 집단으로 부상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국내기업 상위 25% 가운데 67.5%는 위기 이후 상위 집단에서 탈락했다.
위기에도 살아남아 오랜 역사를 지닌 1위 기업들은 일관성있는 R&D 투자로 힘든 시기를 이겨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코닝이 여기 해당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코닝은 2001년 주력 제품인 광섬유 사업이 예상 밖 부진을 겪으며 30억달러의 손실을 보는 바람에 2001년 6억3,000만달러였던 매출이 2003년 3억1,000만달러로 절반 이상 쪼그라 들었다. 그 바람에 12개 공장을 폐쇄하며 전체 직원의 절반인 2만5,000명을 감원했다. 당시 기술총책임자(CTO)였던 조지프 밀러는 “R&D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창업주 5대손이자 최고경영자(CEO)였던 제임스 호튼은 “연구를 그만둔다면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며 2000년 매출의 11.6%였던 R&D비용을 2002년 오히려 15.3%로 상향 조정했다. 이런 뚝심 있는 투자를 발판으로 2005년~2008년에는 연평균 30%씩 성장하며 순이익이 2001년대비 700% 늘었고 영업이익률 18%를 유지했다. 2007년부터 코닝 CEO를 맡고 있는 웬델 윅스는 “불황이어도 매출의 10%를 반드시 R&D에 투자하겠다”며 “R&D 축소는 미래를 어둡게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맥주 회사 아사히도 불황기를 거치며 선두기업으로 뛰어 오른 곳이다. 1985년 일본 오사카에서 설립된 아사히가 2014년 기준 일본 시장 점유율 35%의 1위 업체로 성장한 것은 불과 15년 전인 2001년이다. 이전까지 일본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던 맥주는 기린이다.
아사히가 기세 등등한 기린을 제칠 수 있었던 것은 1987년 공전의 히트작인 ‘아사히 슈퍼 드라이’를 내놓은 것이 계기였다. 일본의 경제 성장률이 0%를 벗어나지 못하던 1985년 아사히는 시장 점유율이 9.6%에 불과했으나 슈퍼 드라이를 내놓으며 1995년 점유율이 27.6%로 수직 상승했다.
이 같은 부활을 가능하게 한 사람이 1986년 아사히에 합류한 히구치 히로타로 사장이다. 은행원 출신으로 맥주 문외한이었던 그는 ‘맛있는 맥주’를 만들자는 당연하고 핵심적인 가치에 집중했다. 맛있는 맥주 개발을 위해 아끼지 않고 투자했다. 당시 공장에서 실시하던 원가 절감 방안을 모두 없애고 최고의 재료를 도입했다. 그 결과 1년 만에 슈퍼 드라이가 탄생했다.
아사히는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일본의 극심한 불황기에 생산설비와 물류 투자를 늘렸다. 1989년, 1990년에만 3,000억엔(3조2,714억원)을 쏟아 부어 생산 능력을 확대했다. 히로타로 사장은 신제품의 연구 개발에 성공하면 여기서 발생한 수익 일부를 다른 신제품 개발에 투입했다. 이때 확립된 수익-연구개발-수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지금도 아사히를 지탱하는 힘으로 평가 받는다.
세계적 자동차업체인 일본의 토요타와 혼다도 1990년 초 미국의 경제 침체기에 크라이슬러, GM 등이 매출 대비 투자 비율을 줄일 때 오히려 투자를 늘려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토요타는 자사 미국 R&D 연구소 인력을 당초 200명에서 1992년 500명으로 확대했다. 가전에서 에너지기업 등으로 변신한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 이멜트 회장은 “훌륭한 기술만이 글로벌 경쟁에서 기업의 수익을 지켜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서희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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