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 중에서도 불황기에 선제적 투자로 정상에 올라선 기업들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LG디스플레이다. 1990년대 말까지 전세계 액정표시장치(LCD)의 대부분은 일본업체들이 공급했다. 당시 관련업계에서는 후발주자인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기술력이 10년 가량 뒤쳐진 것으로 봤다.
이를 좁힌 것은 LCD 수요 하락 시기에 국내 기업들의 멈추지 않은 투자였다. 1997,98년 LCD가격이 60% 가량 폭락하자 샤프, 히타치 등 일본 기업들은 공장 가동률을 40% 수준으로 낮추었으나 국내 업체들은 오히려 모니터에 최적화된 4세대 LCD 생산라인을 늘렸다. 노트북에 국한됐던 LCD가 PC용 모니터 등에 확산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 전략이 주효해 국내 업체들은 세계 LCD 시장에서 선두권으로 올라섰다.
2008년 세계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샤프, 소니 등 일본의 경쟁 기업들이 2008년 대비 평균 31.7% 가량 연구개발 비용을 감축했지만 삼성과 LG는 오히려 평균 77.8% 가량 투자비를 늘렸다.
LG디스플레이는 R&D 비용을 계속 늘려 2007년 2.9%에서 2008년 3.2% 2009년 3.8%로 확대했다. 이 같은 위기 속 투자에 힘입어 현재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중국업체들의 공세 속에서도 수년 째 LCD 패널 세계시장점유율 1,2위를 달리고 있다.
SK하이닉스도 투자로 위기를 탈출했다. 2012년 SK그룹에 인수된 SK하이닉스는 당시 반도체 시장이 침체기인데도 불구하고 전년보다 10% 늘어난 3조 8,500억원의 시설 투자를 단행했다. 이후 2012년 2,270억원의 영업손실에서 이듬해 3조 3,8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깜짝 반전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는 꾸준한 연구개발 투자로 지난해 D램 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서도 5조 3,361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3년 연속 최대 실적을 냈다. 반도체 순위도 2011년 업계 8위에서 지난해 3위로 껑충 올랐다. 적자를 보던 회사가 이제는 SK계열사 중 가장 많은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도 ‘위기 속 투자’ 기조를 이어간다.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고 중국기업의 맹공으로 가격이 떨어지는 악조건 속에서도 사상 최대 투자 규모인 지난해와 비슷한 6조원을 들여 연구개발과 공장자동화에 힘쓸 계획이다.
정준호기자 junho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