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도 달라졌다. 영화 ‘신세계’와 ‘황제를 위하여’, ‘무뢰한’ 등에서 조직폭력배로 등장해 위압감을 조성했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배우 박성웅(43)은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리멤버)과 영화 ‘검사외전’에서 코믹하면서도 허당기 넘치는 캐릭터를 맡아 변신을 꾀해서다. ‘리멤버’는 조폭 출신으로 형형색색의 수트를 즐겨 입으며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변호사 박동호로 출연했고, ‘검사외전’에선 사기꾼 한치원(강동원)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검사 양민우로 등장해 시청자와 관객들의 지지를 받았다. 박성웅의 변신이 통한 것일까. ‘리멤버’는 20%라는 높은 시청률로 종방했고, ‘검사외전’은 9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선전 중이다.
22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성웅은 “두 작품 모두 어느 정도 인기를 얻을 줄 알았지만 이 정도로 호응을 얻을 지는 몰랐다”며 “예전에는 남자 고등학생들이 피하기만 하더니 이제는 ‘대사 한 번 해달라’고 조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중들의 달라진 ‘대우’에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조폭 전문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저음에 사투리를 섞어 내는 불량한 목소리가 영화 관객들에게는 더 익숙했던 그다. ‘리멤버’는 알록달록한 수트를 입는다는 설정 때문에 웃길 수밖에 없었다.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변호사로서 살해 현장에 나온 그는 새 하얀 수트와 하얀 구두로 멋을 내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한 번에 받았다.
“동작도 엉거주춤하게 하고 바지도 일부러 걷어 올리는 등 코믹한 요소에 힘을 주었어요.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파란색 수트나 오렌지색 코트 등 화려한 색상으로 캐릭터를 보여준 게 재미있었죠. 제 스타일리스트가 20년 전 아버지가 맸다는 넥타이까지 가져왔으니까요.”
의상에 힘을 준 박성웅은 사투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사투리 연기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TV드라마라는 특성을 감안했을 때 현실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선생님’까지 따로 뒀다. 휴대폰 음성메시지로 10초 안팎의 대사를 짧게 보내주면 이동 중에 듣고 이를 외웠다. 한 회당 130여개의 음성메시지가 모였고, 무한 반복해 따라 하며 대사를 연습했다. 박성웅은 “내 대본에 대사의 억양을 표시해서인지 리드미컬한 악보 같았다”고 했다. 20년 경력의 배우에게도 사투리 연기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던 모양이다.
법정에서 격렬하게 언쟁이 오가는 장면은 특히 힘들었다고. 영화 ‘변호인’의 시나리오를 쓴 윤현호 작가가 대본을 맡은 ‘리멤버’는 법정드라마다.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 진우(유승호)가 변호사가 되어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정 장면이 드라마의 8할을 차지한다. “법정 장면은 (유)승호와 (박)민영 등 모든 배우들에겐 ‘멘붕’이었고, 그야말로 블랙홀이었다”고 박성웅은 돌아봤다.
법대 출신인 박성웅도 법률 용어가 어려운 데다 주고 받는 대사도 많아 NG를 내기 일쑤였다. 검사로서 법정 다툼 장면을 촬영한 ‘검사외전’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딱딱한 법정 드라마 ‘리멤버’에서 그의 의상과 사투리, 금목걸이, 용 문신 등은 극적 장치로 활용됐다.
“배우를 시작할 때는 미국배우 로버트 드니로의 영향을 받아 선보다는 악한 이미지를 좇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리멤버’의 박동호와 ‘검사외전’의 양민우를 통해 선한 쪽으로 가고 있어요(웃음).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박성웅은 또 한 번의 변신에 도전할 참이다. 4월 개봉하는 영화 ‘해어화’와 한창 촬영 중인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를 통해 로맨스를 머금은 연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조선의 기생 소율(한효주)를 흠모하는 일본 경무국장(‘해어화’)이 됐다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중년의 로맨스(‘그대 이름은 장미’)를 펼친다.
“제 인생에서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던 ‘신세계’의 이중구 역할은 대중들에게 마초의 이미지를 심어준 것 같아요. 하지만 ‘리멤버’와 ‘검사외전’ 덕에 그 이미지의 틀을 깼습니다. 저 알고 보면 그렇게 무섭지 않아요. 하하.”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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