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 정당이 자기 당의 후보자를 공적으로 추천하여 내세우는 것을 뜻한다. 영어에서는 nomination(지명)이란 말을 쓴다. 일본에서는 정당이 후보자를 ‘공인(公認)한다’고 표현한다.
갑골문에서 공(公)은 공평하게 나눈다는 뜻의 성분과 음식을 담아 먹는 그릇을 나타내는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대 중국어에서 천(薦)은 ‘동물이 먹는 풀’ ‘짚으로 만든 거적’ ‘되풀이해서’ ‘바치다’ ‘천거하다’ 등의 뜻으로 쓰였다.
천(薦)은 ‘설문해자’에 “짐승이 풀을 먹는 곳”이라고 풀이되어 있지만, 지은이 허신은 금문을 보지 못하고 뜻풀이를 한 것으로 여겨진다. 금문의 천 자는 사슴을 닮은 동물이 풀들 사이에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아마도, 제사 지낼 짐승이 귀하던 시절에 산 채로 피를 흘리지 않게 해서 상징적으로 제사에 쓰던 짐승을 뜻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맹자’에는 맹자와 제자의 문답 중에, “하늘에 사람을 천거하다”라거나 “요 임금이 순 임금을 하늘에 천거하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사기 열전’에 진시황의 생물학적 아버지로 되어 있는 여불위가 편찬했다고 하는 ‘여씨 춘추’의 ‘거사(去私, 사사로움을 버린다)’ 편에는 기황양(祁黃羊)이란 사람의 고사가 나온다. 춘추시대 진나라 평공이 기황양으로부터 사람을 천거 받았는데 그는 기황양의 원수였다. 평공이 놀라서 묻자 기황양은 이렇게 답했다. “공께서는 누가 적당한가를 물으신 것이지 누가 저와 원수지간이냐를 물으신 것은 아닙니다” 다시 또 평공이 기황양에게 사람을 천거하라고 하자, 이번에는 자기 아들을 천거했는데, “공께서는 누가 적당한가를 물으신 것이지 누가 제 아들인가를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고사 뒤에는 이 얘기를 들은 공자가 했다는 코멘트가 붙어 있다. 공자는 “선하도다! 기황양의 논리로다, 천거할 때 밖으로는 원수를 피하지 않고, 안으로는 자식을 피하지 않는구나”라고 했다. 물론 공자의 코멘트가 실제로 있었던 것이라기보다는 공자의 권위를 빌어서 기황양의 공평무사함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허구적으로 추가된 것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가 대통령을 하던 시절에는, 크게 봐서, 두 가지 유형의 국회의원 공천방식이 있었다. 하나는 시키는 대로 충성스럽게 거수기 노릇을 할 만한 사람을 지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돈을 갖다 바치는 사람에게 후보 자리를 주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는 주로 전자를, 야당 지도자들은 전자와 후자의 방식을 섞어 썼다고 거칠게 말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각 당이 한편으로는 무엇보다 당원이나 유권자들을 고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흠이 없으면서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공천할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선전하고 있다. 또 공식적인 공천위원회를 만들어서 공천 과정을 진행시키려고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좀 더 민주적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천에서의 민주주의는 전체적으로 여전히 미숙하다. 그 과정과 방법이 가급적 아래로부터 공개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이제 다들 인정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아주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갈등이 노출되고 있다.
다 아는 얘기이지만, 거의 모든 현직 국회의원들의 일차적 관심과 목표는 늘 다음 번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대통령 선거라든가 정권 교체 등은 부차적인 문제다. 입법 활동을 포함한 의정 활동의 평가는 의원들이나 유권자들에게 힘을 거의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 한국 정치 문화에서 특이한 것 중의 하나는 공천을 받지 못했거나 받지 못할 것으로 스스로 예견한 사람들 다수가 굳이 탈당이나 분당을 해서는 기어코 선거에 출마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현재 한국의 정치 제도가 보수 정당들 위주로만 굴러가고 있고, 그것도 고질적인 지역주의 틀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유권자들로서는 정당과의 정치적 일체감을 갖기가 힘들다. 내 생각에는, 현직 의원들에게만 유리한 선거법을 확 바꾸고, 의원 수자의 절반은 꼭 정당명부제를 통해서 뽑고, 의원 임기도 2년으로 줄이는 게 나을 듯하다. 하지만 어떻게?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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