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이없는 자막 오류가 있었다. 한 여가수가 생년월일을 적는 장면에 그만 ‘향년 19세’라는 자막을 내보낸 것이다. 여러 시청자들이 잘못을 지적하자 담당자는 ‘방년’을 쓰려다 실수를 했다며 사과하였다.
자주 쓰지 않는 한자어들은 정확한 뜻을 몰라 혼동하기 쉽다. ‘누릴 향(享)’ 자를 쓰는 ‘향년(享年)’은 국어사전에 ‘한 평생 살아 누린 나이’로 풀이되어 있는데,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의 나이를 가리킨다. ‘선생은 9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셨다’처럼 쓴다.
‘꽃다울 방(芳) 자를 쓰는 ‘방년’은 꽃이 화사하게 피는 좋은 때라는 뜻으로 한창 젊은 나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보통은 스무 살을 전후한 나이를 가리킨다. ‘방년 18세 아가씨’처럼 여성에게 주로 쓰지만, 남성에게 쓸 수 없는 말은 아니다. 북한 사전을 포함한 여러 국어사전들에서 여성에게만 쓰는 말이라는 제약이 없으며, 많지는 않으나 실제로 남성에게도 사용된 예들이 있다. ‘김00 군은 방년 20세의 소년이나...’, ‘방년 28세의 배우 부부 이00 씨와 한00 여사’ 등의 용례를 과거 신문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묘령(妙齡)은 ‘방년’과 비슷하지만 스물 안팎의 젊은 여성의 나이만 가리킨다. 남성이나 나이가 많은 여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따라서 ‘묘령의 여인’이라는 표현은 가능하지만 ‘묘령의 노인’이니 ‘묘령의 40대 여성’이니 하는 말은 잘못이다. 그런데도 이런 표현이 심심찮게 쓰이는 것은 ‘묘령’을 ‘묘하다’는 말에 끌려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뜻으로 오해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남자 나이 스무 살을 이르는 말은 ‘약관(弱冠)’이다. ‘예기’에 나온 말로 스무 살이 갓을 쓰는, 곧 관례를 올리는 나이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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