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생 243명 교과교육ㆍ직업훈련
사회정착 위해 인성교육 가장 중시
“관심 받으면 성취ㆍ자신감 느껴”
19일 오후 경기 의왕의 고봉중고교 교육관의 한 교실에 꾸며진 무대에 김정호(18ㆍ가명)군이 올라섰다.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손수건을 끝없이 뽑아 내고 막대기를 꽃으로 바꾸는 마술을 완벽하게 해냈다. 여느 학교의 특별활동 시간과도 같다. 다만 건물 창 밖에 쇠창살이 박혀 있고 학교 주변은 3m 가량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 유다르다. 청소년들이 학교 위ㆍ아래층으로 오르내리거나 생활관으로 이동할 때는 담임교사가 잠금장치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지문 인식을 해 굳게 닫힌 문을 열어줘야 한다. 고봉중고교는 비행을 저지른 소년원생들을 교육시키는 서울소년원의 다른 이름이다.
공연이 끝난 뒤 칭찬을 받은 김군은 “칭찬을 들으면 노력을 인정해 주고 관심을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김군은 어릴 때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해 소년원을 들락날락했다. 2014년 12월 다시 소년원에 들어온 김군은 담임교사의 권유에 따라 마술을 배우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손재주가 좋아 먼저 배우기 시작한 다른 원생들을 금세 따라 잡은 김군은 2월 출원 후 대학에 진학해 마술을 전공할 예정이다. 그는 머쓱해 하면서도 “마술을 연습하면서 인성도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군을 마술의 세계로 이끈 손경수(34) 교사는 “원생들이 마술을 종류별로 하나씩 익힐 때마다 노력에 대한 보상, 성취감을 느끼고, 봉사활동으로 충북 음성 꽃동네 등에서 공연하면서 남에게 베푼다는 점에 자신감도 커진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소년원에는 14~20세 남자 청소년 243명이 강ㆍ절도, 폭행이나 성폭력 등의 범행을 저지르고 입원해 있다. 소년원은 김군처럼 과거를 반성하고 사회에서 제 자리를 찾고자 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중학교(40명)와 고교(60명) 교육과정, 제과제빵반ㆍ사진영상반ㆍ매직엔터테인먼트반ㆍ한식조리반ㆍ밴드반 등 5개 직업능력개발훈련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재범률을 낮추고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인성교육과 함께 교과교육 및 직업훈련을 병행하는 것이다. 지난해 소년원생 93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106명이 보통 학교로 전ㆍ편입했다. 대학에 들어간 원생도 20명에 달한다.
이들이 이처럼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된 데에는 담임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밑바탕이 됐다. 소년원 밴드 레저렉션(Resurrectionㆍ부활)을 지도하는 손승혁(32) 교사는 밴드반 학생들의 롤모델이다. 밴드에서 기타를 맡은 김도철(19ㆍ가명)군은 “담임 선생님이 (다른 걸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도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시간을 쪼개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도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밴드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손 교사를 보고 따라 읽은 책이 지난해에만 100권이나 된다. 김군은 손 교사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이 특별해지는 느낌을 받았단다. 손씨는 “누군가 관심을 갖고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생각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좋은 방향으로 변해 간다”고 말했다.
소년원 측은 원생들에게 정신과 치료도 병행한다. 원생의 40% 정도가 분노조절 장애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같은 문제가 있어 매일 50여명이 치료를 받는다. 예절 교육은 필수다. 김진우 사회정착계장은 “인성 교육이 우선돼야 사회에 나가서도 잘 정착할 것이라 생각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며 “비행을 저질렀지만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받으면 원생들이 변화하는 모습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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