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빈(22ㆍ한국체대)이 아시아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스켈레톤 세계선수권 대회 은메달을 획득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스켈레톤 입문 불과 3년 만에 거둔 쾌거다. 그의 최종 목표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이다. 윤성빈의 앞에는 ‘스켈레톤의 우사인 볼트’로 불리는 세계 1인자 마르틴스 두쿠르스(32ㆍ라트비아)가 버티고 있다. 하지만 윤성빈은 현재 기량과 상승세를 유지한다면 평창 올림픽 금메달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다는 평가다. 스켈레톤은 1,000∼1,500m 길이의 경사진 트랙을 썰매에 앞으로 엎드려 탄 채 달리는 경기로 최고시속이 130㎞를 웃돌아 100분의 1초 차이로 메달색깔이 바뀌는 종목이다.
윤성빈은 19~20일(한국시간) 이틀에 걸쳐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이글스 경기장에서 열린 2016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4차 시기 합계 3분29초97의 기록으로 34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공동 2위에 올랐다. 세계선수권대회는 올림픽 다음으로 권위가 높은 대회다. 세계선수권의 경기 방식은 올림픽과 같다. 이틀에 걸쳐 모두 4번의 레이스를 거쳐 기록을 합산해 순위를 정한다. 반면 한 단계 아래 등급의 대회인 월드컵은 하루 두 차례 레이스로 메달을 정한다.
한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스켈레톤 선수가 세계선수권 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성빈은 시상식 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4등만 해도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는데 2등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어 기분이 매우 좋다”고 감격해 했다.
한편 지금까지 아시아 출신이 세계선수권에서 거둔 역대 최고의 성적은 2003년 일본의 고시 가즈히로가 홈인 나가노 트랙에서 거둔 4위였다. 한국 스켈레톤이 그 동안 이 대회에서 거둔 최고 성적은 지난해 윤성빈이 기록한 8위였다.
윤성빈의 스켈레톤 입문은 드라마틱하다. 그는 2012년 7월에 스켈레톤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평범한 고3 수험생이던 그는 강광배 한체대 교수의 조언과 대학진학에 유리할 것이라는 이유로 스켈레톤을 시작했다. 1년 6개월 만에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16위에 올랐다. 당시 윤성빈은 신발에 ‘보고 있나’란 한글을 새겨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8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어 올 시즌 들어 치른 7차례의 월드컵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수확했다. 특히 지난 5일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월드컵 7차 대회에선 두쿠르스를 0.07초 차이로 따돌리고 시상대 맨 위에 서기도 했다.
이번 대회 역시 1위는 절대 강자 두쿠르스(3분28초84)였다. 그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다. 두쿠르스는 4차 시기 중 무려 3번이나 트랙 기록을 갈아치우는 괴물 같은 저력을 발휘했다. 윤성빈은 이번 대회 결과 두쿠르스에 이은 세계랭킹 2위를 유지했다.
윤성빈이 평창 올림픽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쿠르스를 넘어야 한다. 두쿠르스는 2009~10시즌부터 이번 시즌까지 무려 7시즌 연속 월드컵 랭킹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빠른 스타트와 탁월한 주행 능력을 뽐내고 있다.
이는 2001년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한 덕에 세계 대부분의 슬라이딩 코스를 꿰뚫고 있어 가능했다. 썰매종목은 트랙의 특성을 잘 이해해야 유리하기 때문에 두쿠르스의 경험은 만만치 않은 이점이 되고 있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이 때문에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윤성빈이 상대적으로 이점을 갖게 된다. 두쿠르스가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코스가 바로 내달 개장하는 평창 슬라이딩센터이기 때문이다.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는 올림픽 전까지 테스트 이벤트 등 몇 차례 경기가 열릴 예정이지만 두쿠르스로선 그 동안 매년 경기를 했던 다른 코스에 비해 생소할 수 밖에 없다. 실제 그는 2010 밴쿠버 올림픽과 2014 소치 올림픽에서 가장 확실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지만 모두 올림픽 개최국의 선수에게 밀려 은메달에 머물렀다.
평창 슬라이딩 센터가 완공되면 앞으로 윤성빈은 이곳에서 집중 훈련을 하게 된다. 2년 가까이 슬라이딩 센터에서 훈련을 하며 트랙의 특성을 완벽하게 숙지한다면 안방 이점을 안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치를 수 있다. 윤성빈은 “평창 슬라이딩센터가 지어지면 외국인 코치를 한국으로 데려와 홈 트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두쿠르스를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는 윤성빈의 상승세와 기량을 생각한다면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이 꿈만은 아니라는 평가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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