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위기대응 능력이나 정치적 감각에 탄복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정국운영 노하우가 예사롭지 않다. 한국에서 ‘3金 시대’ 유행하던 정치유단자 셈법으로 치면 최고권력까지 올랐으니 9단은 분명하다. 단명총리가 일상인 일본에서 총리를 두 번씩 하고 롱런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 높게 매길 수도 있다.
일본에서 지지율 관리는 통치의 결정적인 부분이다. 30%선이 무너지면 조기총선으로 이어져 정권이 바뀐다. 지금 아베 내각은 구설과 실언, 악재가 끊이지 않는데도 50%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실기하지 않는 위기관리의 정교함이 비결인 것 같다. 지난달만 해도 경제재생장관의 부패의혹이 터지고도 반보 빠른 ‘깜짝 사임’에 야당은 제대로 된 공세 한번 펴지 못했다.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전 장관은 아베 1차 내각은 물론 2차 내각의 개국공신이었다. 정권 핵심인물의 대형스캔들이 돌출했지만 본격적인 추궁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태가 수습됐다. 세간의 관심은 인기그룹 ‘스마프’ 해체소동 같은 화제로 분산됐다. 아빠 육아휴직운동 후 불륜을 저지른 자민당 의원도 파문이 커지기 전 국회를 떠났고, 개인의 일탈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아베 정권이 ‘부관참시’ 수법을 쓰는 풍경을 지켜보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과거 3년간 경험한 민주당 정권의 무능이미지를 건드려 얻는 반사이익이다. 실제 여론조사에서 지지이유를 물으면 과거 내각과 비교해 낫다는 답이 가장 많다. 아베 총리가 국회에서 민주당 시대와의 차이를 강조하는 도발적 답변을 반복하는 것도 괜한 이유가 아닐 것이다.
대외변수도 곧잘 활용한다. 연초 북한이 핵실험을 언급한 뒤나 지난해 1월 ‘이슬람국가(IS)’가 일본인 2명을 살해했을 때 5%가량 지지도가 올랐다. 국가위기로 규정되면 당대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대중의 습성을 아베 총리는 꿰뚫고 있는 듯하다.
특히 여성지지층을 되찾아온 위력은 주목할만하다. 작년 안보법 국면에서 많은 일본 여성들은 자녀가 미래의 전쟁터에 끌려갈 불안을 느꼈다. 남성보다 반정부 흐름이 강했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선 남녀 차가 크게 줄었다. 이미 통과된 안보법에 둔감해진 탓이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아베 정권이 또 다른 시험대에 올라 있다. 지지율과 주가의 함수관계다. 둘 다 사람 심리에 좌우돼 어느 한 방향에 탄력이 붙으면 우르르 몰려가는 경향이 있다. 2012년 12월 출범이래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상당부분 주가등락과 비슷하게 갔다. 때문에 최근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 이르기까지 다시 위기설에 직면한 아베노믹스의 향배가 심상치 않은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연초부터 이어진 주가하락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본인들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불신보다 중국의 경기불안, 유가급락 같은 해외요인을 거론한다. 정부와 일본은행이 일체가 돼 디플레이션 탈피를 향해 강하게 움직인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아베노믹스 내용보다 15년간 침체된 일본경제를 살리려 발버둥 치는 그 자체에 민심이 반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지지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될까. 지난 1월 일본의 수출통계는 6년 3개월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엔저를 통한 수출경쟁력은 정권을 지탱하는 근원이었다. 그래서인가. ‘정치 9단’ 아베는 전례와 다른 카드를 쓸 조짐이다. 경제를 내세워 선거에서 이긴 뒤 정치안보 숙원을 해결했던 그가 이번엔 반대로 개헌 같은 정치이슈를 전면에 내세워 돌파하려 하자 여권내 의견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승부수는 이번에도 통할까. 7월 참의원선거까지 아베 통치술의 진면목을 감상할 국면이다. 매번 써먹은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감이 위협받고 야권단일후보에 대한 유권자의 기대가 높아진다면 정말 볼만한 싸움이 될 것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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